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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를 향한 창조적 파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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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 목표는 최대한 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 집행 과정의 혼선을 줄이고 정부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현재 정부가 이룩하려는 창조경제는 그 개념부터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

 2000년대 들어와 영국 등 일부 국가와 국제기구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창조경제’란 용어는 자본이나 단순한 노동보다 사람의 창의력 혹은 지적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소위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이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예술·문화·기술 등 사람의 창의력과 경제가 융합되고 어우러진 새로운 산업을 통틀어 일컫는 기업과 산업적 차원의 개념으로 쓰였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목표로 하는 창조경제는 이러한 창조산업의 활성화뿐 아니라 기존의 모든 산업을 포함한 우리 경제체제 자체를 더욱 효율화·활성화하겠다는 경제체제적 차원의 정책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구해야 할 구체적 목표는 분명해진다. 한마디로 슘페터(Schumpeter)적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경제체제 내지 기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정부 정책의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의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미래창조과학부 차원을 넘어 범정부적 차원에서 일관되게 이뤄져야 한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창조적 파괴의 측면에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험 부담을 마다하지 않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으로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가들의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 과정을 바로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으로 본 것이다.

 물론 슘페터는 이러한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적어도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적 시각에서 내다봤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란 개념은 단기 정책적 측면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를 향한 제1차적 목표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창조적 파괴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 국민 모두의 창의력과 기업하려는 의지가 창조적 파괴 과정으로 가장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범정부적 차원의 규제 개혁에 국정의 힘이 실려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창조경제를 위한 규제 개혁 보고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러한 규제 개혁을 위한 노력과 함께 특히 창조산업 관련 창업과 기업 활동을 최대한 촉진하기 위한 특별한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창의력 하나만으로 창업을 하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제도 금융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정부나 사회가 소위 벤처기업의 성공을 보장해 줄 수는 없지만 외국의 경우처럼 실패는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봐주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창조산업의 기초가 되는 지적재산권 보호와 함께 비대칭적 힘을 가진 상대 경제주체의 불공정한 행위를 철저히 막아 주는 일도 중요하다.

 또한 중장기적 안목에서 창의력 넘치는 인력 자원의 공급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교육 기반을 형성하기 위한 교육 개혁도 창조경제 목표 달성의 핵심으로 강력히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창조경제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제 기능을 하려면 정부의 정책 운영 패러다임의 창조적 파괴도 필요하다. 특히 기존의 공무원 채용 제도와 병행해 특수·전문인력을 활용하고, 이와 함께 산·관·학 전문인력의 상호교류 촉진을 위한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창조산업 관련 부처뿐 아니라 모든 정부 부처에 필요한 일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슘페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창조적 파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될 사회적 고통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기존의 제품과 생산방식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 개척됨에 따라 발생하는 실직과 가정파탄, 기업 부도와 파산, 특정 지역 경제의 황폐화, 소득 분배 악화 등에 따른 사회·정치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제도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회안전망 확충과 함께 적정한 수준의 복지제도 확립 그리고 중장기적 차원의 교육 개혁과 함께 근로자의 훈련·재훈련과 평생교육을 위한 제도도 강화해야 한다. 소위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과 사회적 통합 노력은 창조경제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