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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알다가도 모를 사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2호 30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산다는 것은 아는 사람을 점점 넓혀가는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 부모를 알게 되고, 자라면서 동무와 이성을 알게 되고, 동료와 거래처 직원과 아파트 경비원과 택배기사와 단골식당 주인을 알게 된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남편과 아내를, 자식이 있다면 딸과 아들을 알게 된다.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알고 싶고, 알수록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니까. 옛사람도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곧 참으로 보게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어느 여름 동대구역에서 시인 이성복 선생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인사를 해버렸다. 선생의 시를 좋아해 시집도 여러 권 사 읽고 사진도 본 적이 있어 내 무의식은 선생을 아는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카프카를 닮은 선생은 모르는 사람의 인사를 받자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 나오는 K, 그러니까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갑자기 체포된 요제프 K의 표정으로 “그런데 누구시더라?” 하고 물었다.

시인이 물었기 때문에 그 질문은 시적이었다.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인가?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그랬다. 나는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고, 왜 인사를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런 저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앞으로 선생과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역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이라도 꺾어 바치고 싶었으나 그것은 마음뿐 결국 ‘그 여름의 끝’에서 ‘아, 입이 없는 것들’이 되어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어버이날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으며 가족은 모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그런 분위기에 고무되었는지 평소 말수가 적은 아들도 학교 생활과 자신이 쓰고 있는 시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아 아들에게 아빠 노릇을 하려고 이렇게 충고했다. “아들, 시도 좋지만 이젠 취업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 아들은 웃었다. “아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도 애써 웃었다. “시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직장에 다니면서 취미로 하렴.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나 본데 시 써서 먹고 살기 힘들어. 아들, 내가 볼 때는.” 아들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제가 볼게요. 제 눈으로 제가 볼게요. 제 꿈은 제가 꾸고 제 시는 제가 쓸게요.” 아들의 얼굴을 한 이 낯선 청년은 누구인가?

“아빠, 베드로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갑자기 무슨 말이야?” “닭이 울기 전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모른다고 했잖아요. 저는 그게 베드로의 진심이었다고 생각해요.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를 알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내가 베드로란 말이냐?” “그게 아니라 제겐 아빠가 모르는 제가 있어요. 아빠는 저를 다 안다고 생각하죠? 저도 아빠를 몰라요.” “지금 너 이 아빠를 부정하는 거야? 아빠가 부끄러워? 창피해?” “아빠는 아빠를 아세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산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모를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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