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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암 투병에도 털털한 엄마 … "얘, 너도 스캔들 좀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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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로의 옷매무새와 화장을 고쳐주며 꼭 껴안은 모녀. “내 얼굴이 훨씬 더 크잖아”라는 엄마의 투정에 딸은 고개를 옆으로 살짝 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똑순이, 노력파, 엄친딸. 배우 이윤지(29)를 수식하는 말은 한결같이 강하다. 2004년 청춘 시트콤 ‘논스톱4’로 데뷔한 뒤 10년간 스캔들 한 번 없었고 사소한 구설에 휘말린 적도 없는 모범생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20여 편에 출연하면서도 중앙대 연극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 연극과에서 두 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실하다.

 그는 욕심도 많다. KBS ‘연예가중계’ MC와 MBC ‘우리 결혼했어요’ 모두 본인이 자원해 출연했다. ‘연예가중계’는 개편 때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자리를 따냈다. 그는 “프로그램 관계자에게 선택받아야만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라며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스스로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매 순간 열심히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였다. ‘된장녀’ ‘신상녀’ ‘사고뭉치’가 대세가 되고 자신의 실수나 비행을 드러내 대중의 마음을 얻는 방송 환경에서 모범생이 설 자리는 딱히 없었다. 이씨는 “제 단점을 없애려고 더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제 와선 그게 단점이 되니 당혹스럽더라”고 털어놨다.

 강해 보이지만 마음이 여린 그가 거친 연예계 생활을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준 건 엄마 정진향(56)씨. 외향적이고 괄괄한 정씨는 꼼꼼하고 차분한 이씨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주는 존재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는 모녀라기보다 오래 두고 사귄 벗에 가깝다. 스스로를 ‘환상의 커플’이라 말하는 모녀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딸 옷 사 입히는 게 유일한 낙

 “귀하게 얻은 딸이죠.” 정씨가 입을 열었다. 이씨는 태어나자마자 병원 신세를 졌다. 신생아 호흡 곤란 때문이었다. 탯줄이 감기거나 난산에 따른 산소 부족 때문에 찾아오는 질병이라 흔하다고 들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딸을 보는 엄마의 가슴은 찢어졌다. 2.8㎏으로 태어난 아이는 3주 만에 2.2㎏이 됐고 젖 대신 약과 주사로 버틴 끝에 겨우 퇴원할 수 있었다. 인큐베이터에서 발목에 감아뒀던 기기 자국이 아직까지 흉터로 남아있을 정도다. 병원비도 만만찮았다. “당시 한 달 월급이 30만원도 안 됐는데 병원비는 일주일에 70만~80만원씩 내야 했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수천만원 들었다고 봐야죠.” 정씨는 아득한 듯 과거를 더듬었다.

  엄마의 사랑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8년 전 처음 노래강사를 하며 번 돈으로 밤에 동대문시장 가서 딸의 옷을 잔뜩 사다가 이것저것 입히는 게 정씨의 유일한 낙이었다. “뭘 입혀놔도 잘 어울리고 어찌나 예쁘던지…. 그 힘으로 일했죠.” 워킹맘이지만 반드시 딸 입맛에 맞는 나물이며 생선 반찬을 직접 해 먹였다.

 귀하게 키운 딸은 제 몫을 했다. 말썽 한 번 없이 올곧게 커줬고 엄마 정씨에게 딸로, 때론 남편으로, 보호자로 다가갔다. 2005년 11월 이씨는 자궁암 수술을 받은 엄마 곁에 꼭 붙어 간병을 도맡았다. 1년 반이 지난 2007년 엄마가 유방암 수술까지 받자 이번엔 이씨도 같이 쓰러졌다. “수술실 앞에 엄마와 같은 수많은 엄마들이 수술모를 쓰고 긴장한 채 대기 중이더라고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엄마가 두 번째 수술 받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수많은 엄마들이 그런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졌죠.” 큰 충격을 받은 이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 엄마의 병실로 옮겨졌다. 두 시간 동안 수액을 맞고서야 깨어났고 한참을 토했다. 엄마가 수술 받는 동안 딸도 함께 고통 받은 셈이다.

성격·취향 정반대 … 하지만 친구 같은 모녀

엄마와 딸의 데이트 필수 코스는 셀카 촬영. 지난해 서울 삼청동에서도 한 장의 추억을 더했다.

 두 번의 수술 후 엄마에 대한 이씨의 잔소리가 늘었다. “지금 어디야? 이렇게 늦게 다니면 어떻게 해. 졸음 운전은 위험해.” 엄마의 퇴근이 늦어지면 피곤할까 염려하고, 건강을 해칠까 걱정, 밤이 늦어 위험할까 노심초사한다. “엄마, 커피는 마시지 말아야지. 잠을 못 자잖아”라는 말에 정씨는 “한 모금만 마시자”라며 애교를 부린다. “노래강사가 사람을 워낙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늦게까지 일하고 밥자리, 술자리도 많다는 걸 알지만 살은 좀 뺐으면 좋겠어요. 나이 들면 1㎏당 무릎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4㎏이라는데, 그럼 3㎏만 빼도 관절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런 노파심이 들죠.”

 반대로 엄마는 너무 털털하고 모범생인 딸에게 잔소리를 한다. “너처럼 완벽하게 보이면 남자가 안 생겨. 빈틈도 주고 콧소리로 ‘오빠 오빠’ 하면서 애교도 부려야지.” “평소에도 옷 갖춰 입고 다니고, 화장도 좀 하고.” “스캔들도 좀 내라. 어떻게 그런 사고도 한 번 안 치니?”

 둘은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다. 화려하고 튀는 메이크업을 즐기는 엄마와 달리 딸은 단아한 화장이나 민낯을 더 좋아한다. 여성스러운 레이스나 시폰 소재의 옷을 즐기는 엄마는 청바지에 운동화를 즐기는 딸의 취향이 못내 아쉽다.

30분이면 쇼핑을 끝내는 엄마는 보고 또 보는 꼼꼼한 딸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식과 나물 반찬, 채소를 좋아하는 딸과 달리 엄마는 파스타와 빵, 군것질을 즐긴다.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못 대는 엄마는 ‘알코올 영재’로 불리는 딸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다른데도 모녀는 늘 서로를 그리워한다.

 모녀의 하루 일과는 저녁 수다로 마무리된다. “엄마가 집에 곧 도착한다고 하면 주차장에서 기다려요. 둘 중 한 사람이 늦으면 세수 안 하고 기다리고요. 같이 클렌징하고 반신욕하고 때도 밀어주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든요. 감히 우리만큼 가까운 모녀 사이는 없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런 정씨가 ‘자비심을 잃는’ 때가 바로 이씨의 작품을 모니터할 때다. 드라마·연극·영화·노래를 막론하고 딸의 작품에 날카로운 평가를 내린다. “혹독하죠. 극 중에 우는 장면이 나오면 ‘넌 그렇게밖에 못 우니? 힘을 좀 빼고 자연스럽게 울어야지’라거나 ‘이 영화에서 넌 그냥 병풍 같다, 야’라고 말해요. 거침이 없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씨가 거든다. “딸이라 그런가 봐요. 좀 더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모니터링해요. 그게 윤지에게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서운할 법도 한데 딸은 귀담아 듣는다. 날카로운 모니터링 역시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라고 믿어서다.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배우 출신이다. 배우는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니 잘해보라’고 격려해줬어요. 출연 약속이 된 배역에서 예기치 않게 여자 아이돌에게 밀릴 때도 엄마는 ‘더 정진해라. 실력만 있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다독이시죠. 엄마 충고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모녀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장난치고 서로 사진을 찍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서로에게 따뜻한 친구가 돼주는 신세대 엄마와 딸은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글=채윤경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기사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땡큐맘 캠페인” 시리즈 세 번째로, 중앙일보·JTBC와 한국P&G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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