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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정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장님, 저는 그 동안 혼이 났읍니다. 「마네」·「모네」·「르노아르」·「드가」· 「피사로」·「세잔」 선생들 께서 며칠밤을 농성을 하셨읍니다. 「르노아르」선생은 사뭇 주먹질이라도 하실 듯 노하고 계십니다. 이젠 저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어른들을 누추한 창고속에 모셔 두어서 지극히 안되었지만….』
편지는 아직도 끝이 나지 않는다. 남불「상·드로페」현 사무소의 문화국장 앞으로 보낸「누구」의 서한이다. 그 「누구」 는 바로 61년 7월15, 16일 이틀 사이에 그 지방의「라시아트」미술관에서 회화57점을 훔쳐 갔던 「도둑」이다. 그는 인상파의 그림만을 주로 훔쳐 갔었다.
당시의 시가로는 무려 2백만「달러」로 평가되는 세기적인 예술품 도난 사건이었다. 도둑의「유머러스」한 명문서한은 그 예술품들이「파리」에서 약80킬로 떨어진「빌리에·상·조르지」촌 어느 창고속에 무사히 보관되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도둑은 겨우『상·드로페만』이라는 수채화 한 폭을 가져가고 말았다. 그것도 고향의 아름다움을 가강 감동깊게 묘사한 그림이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훔쳐간다고 애소(?)했다. 도둑도 이쯤되면 순정파에 속한다. 그의 향수병엔 오히려 미소마저 머금게 된다.
그대조적인 화제로는 유근필일당이 등장한다. 충무공의「난중일기」를 훔쳐간 도둑떼들 말이다. 그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범행 그 보다도 왈본에 반출하려던 그들의『털복숭이심장』이다.「난중일기」가 오늘 우리에게 그처럼 소중스러운것은 무슨까닭인가. 우리근세사의 뼈아픈 전란속에서 한명장이 구구절절에 읊조린 애국충정은 오늘의 우리에게 얼마나한 감동인가. 그것은 오늘에도 숨쉬는「민족의 숨소리」이다. 불행히도 이 절필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경우를 상상하면 진땀이 난다.
「난중일기」는 한 선량한 시민의 양심이 찾아냈다. 국보를 시민이 지킨 것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이다. 더 없이 흐뭇하고, 더 없이 긍지롭다. 오늘의 시민에게 정말 아쉬운 것은 그처럼 따스한 시민정신이다.
이제 관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수 만은 없다. 이 시민은 바로 그들의 머리 위에 찬물도 퍼부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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