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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문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변호사 존경하는 재판장님!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안 계신 최전방 현지에서 소대장으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보다 냉엄해야 한다는건 본변호인도 숙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기의 별명이 뭣인지도 모를만큼 순진한 김소위는 지일병에게 오직 인간적인 동정과 우애만으로 대했던 것입니다. 제1피의자가 사복을 입힌것은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지, 탈영을 방조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불행히도 제2피의자가 검문소에서 불심검문을 당하지 않았던들 그는 고향에서 들아와 평온하게 군 복무를 계속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 건에 관해서 변호인은 제1피의자는 어디까지나 선의의 피해자임을 밝히며, 재
판장님의 관대하신 처분을 바라며 변론을 종결짓겠습니다. (변호사가 정중하게 절을 하고 소대장을 돌아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이때 검사가 다시 일어나서 재판장을 향한다.)
검사 존경하는 재판장님.지금 변호인의 열성어린, 그리고 인도적인 변론을 감명깊게 들었읍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실을 기피하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가정 밑에서 모든 사건이 이루어진것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그러나 탈영방조는 분명합니다.
제1피의자가 시인하고있는 바와같이 휴가조치를 취한 결과가 문제지, 왜 보냈느냐는 이유
가 개입할수없습니다 .다음으로 변호인은 제2피의자의 주소지로부터 송달됐다는 편지 운
운하지만, 정작 장본인인 제2피의자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변호인 재판장님! (손을 들고 몹시 격분한둣 일어서려한다.)
재판장 (변호인에게) 이유성립 안 됩니다. (사이) 검사는 계속하시오.
검 사 (강력하게) 변호인의 변론속에도 제1피의자가 학사출신임을 강조했습니다. 학사출신이기 때문에 정상을 참작해야 된다는 조항은 법조문 어느 조항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도층에 있는 지식인이 더구나 부하를 통솔해야 할 장교가 이러한 죄를 범한다는
것은 앞날을 위해서도 일벌백계의 엄중한 벌로써 다루어져야 합니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재판장님의 법관으로서의 신념이 이러한때 다시한번 나타나길 바라며 제1피의자를 다시한
번 진술할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재판장 진술받으시오..
검 사 (제1피의자에게) 변호인의 변론내응을 보면 지일병의 주소지로부터 편지 온 사실이 있다는데 사실이오?
소대장 (몹시 지쳐있다) 네.
검 사 그 내용은?
소대장 (몹시 힘들고 괴로은듯) 모릅니다.
검 사 (싸늘하게 웃으며) 지금 그 편지는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소대장 모릅니다.
검 사 (격하고 날카로운 어조로) 편지는 왔는데 그 내용이 뭔지, 지금 그 편지는 누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신검열은 하고 있소?
소대장 (사이)
검 사 피의자는 사신검열을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직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책무를 기피해왔음을 인정합니까?
변호인 잠깐! (1피의자에게) 빨리 편지내용과 행방을 밝히시오.
소대장(고개를 들고 길게 변호인을 주시한다) …
변호인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지 마시오. 무거운 짐을 혼자 질 필요는 없읍니다.
소대장 (다시 고개를 들고 타는 듯이 변호인을 쳐다보더니) 변호인께서 해 주신 변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변호인 그러나 뭐요? 어서 계속하시오.
소대장 (사이) 인간에의 길은 어렵습니다. (고개를 다시 깊이 꺾는다) 이상 더 아무 말도
않겠읍니다.
(변호인도 단념한 듯 자리에 앉는다. 몹시 안타까운 모습이다.)
검 사 재판장님! 그럼 증인을 채택하겠읍니다.
재판장 (고개를 묵중하게 한번 끄덕한다)
검 사 (간수장에게) 증인채택!
간수장 (출입구를열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선임하사를 데리고 증언대에 위치시킨다.)
검 사 계급과 성명.
선임하사 계급은 중사,성명 김달세입니다.
검 사 직책은?
선 임 소대 선임하사입니다.
검 사 위증을 할 경우에 어떻게 된다는 걸 알고 있나?
선 임 네? (무슨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
검 사 거짓말을 할 경우에 그 죄가 크다는 걸 아느냐 말야?
선 임 네, 압니다.
검 사 소대장은 평소에 술을 좋아했나?
선 임 네, 고문관께선… (얘기를 잘못했다는 걸 뉘우치듯 여러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
나 소대장은 돌처럼 말이 없고 다른 사람은 약간 동요를 일으킨다.)
검 사 지금 뭐라고 했지?
선 임 아, 아닙니다.
검 사 (엄하게) 고문관이라고했잖아! 그게 무슨 뜻이지?
선 임 (이상 더 버틸수 없다고 느끼자) 저희들은 소대장을 그렇게 부릅니다.
검 사 (조소를 띠며) 이유는?
선 임 말하자면 군대 실무경험이 없기때문에 매사에 서투르고 또 그러면서도, 아는체 한
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검 사 그게 어디서부터 나온말이지?
선 임 잘은 모릅니다만, 아마 외국고문관 군인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왔을땐 말도 잘 안
통하고 이쪽사정에 어두워서 그런 말이
검 사 알았어! 그러니까 소대장이 평소에도 사병들의 사정엔 어두웠다는 뜻도 되겠지?
선 임 녜? 네‥
검 사 소대장이 평소에 술을 좋아했다는데 같이 마신 일이 있나?
선 임 그건 없읍니다만, 소주 두 병은 하심니다. 두흡들이 두병 말입니다.
검 사 사병들이 가끔 소대장에게 술을 사다 주는 경우도 있지?
선 임 네.
검 사 그 돈을 사병들이 어디서 나나?
선 임 월급도 있고 또!
검 사 또?
선 임 집에서 갖다 쓰기도 합니다.
검 사 소대장이 편지검열을 할테지?
선 임 네.
검 사 그러면 집에서 어느사병이 송금했는지 안했든지를 다 알겠군?
선 임 네.
검 사 선임하사도 지일병의 집에서 온 편지를 본 일이 없지?
선 임 네.
검 사 평소에 지일병이 소대장 숙소에 자주 찾아 갔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선 임 녜, 자주 갔읍니다.
검 사 그 이유가 뭔지 알겠나?
선 임 글쎄요. 소대원들이 휴가나 기타 개인의 애로사항이 있을때는 소대장 숙소릍 찾습니다만, 특별히 다른 이유란 별로 없읍니다.
검 사 지일병의 가정환경은 어느정도라고 알고 있나?
선 임 잘은 모르지만, 먹을만큼은 있다고 들었습니다.
검 사 소대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
선 임 물론이죠.
검 사 그럼 선임하사로서 평소에 대장에 대해서 불만이라든가... 느낀거 없나? 기탄 없이
말해봐!
선 임 말하겠읍니다. 군대란 어슬픈 이론이나 감상만 가지곤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상이나 감상이나 이런 것은 금물입니다. 저의 입장으로선 창조성마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규정대로만 하면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 십삼년의 군대생활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소대장은 불필요한 이상이나 감상, 무슨 창의성의 문제같은 걸 들추어서 항상 저와 의견이 대립됩니다.
때론 인정을 앞세우기도하고 말입니다. 인정이란 것은 군데조직에선 금물이라고 봅니다.
검 사 따라서 평소에 소대장은 제반 군법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얘기군?
선 임 아, 그게 아니구…
검 사 인정이 앞섰다는 얘기는 바로 그런것 아닌가?
선 임 (어정쩡하다가) 네. 그렇죠.
검 사 그러니 자연히 소대원들에게 원망이 많겠군? 말하자면 누구는숙소에자주 데리고
들어가고… 하는식으로말야.
선 임 네, 그런 경우도 있죠.
검 사 (돌연히) 분명히 말해! 그러면그렇다, 아니면 아니고 확실한답변을하라!
선 임 (엉겹결에) 그렇습니다.
검 사 지금까지의 증언 내용에 거짓말은 없지?
선 임 없읍니다.
검 사 수고했소! 퇴장해도 좋습니다.
(선임하사가 소대장을 돌아본다. 그러나 소대장은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검사는 제2피의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심문을 한다.)
검 사 제2피의자의 본적은?
지일병 경상북도 영주군 ××면 ××리 입니더.
검 사 군 복무는?
지일병 일년 일개월입니더.
검 사 휴가증도 없이 휴가를 나갔던 사실이 있나?
지일병 예 있입니더.
검 사 언제지?
지일병 지난 10월 22일입니더.
검 사 혼자 갔나?
지일병 네.
검 사 누가 보내줬나?
지일병 소대장님이 보내 주셨읍니더.
검 사 갈때 무슨 옷을 입었나?
지일병 사복을 입었입니더.
검 사 사복은 누가 구입해 줬나?
지일병 소대장님이 구해주셨읍니더.
검 사 비공식으로 가는 줄알고 갔나?
지일병 (머뭇거리다) 몰랐입니더.
검 사 (버럭 소리를 지른다) 몰라?
지일병 (사이)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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