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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멋·새 풍조 <생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밀어닥친 외래풍조는 68년에도 계속 그 영향을 더해가고 뿌리를 박기 시작한다. 대가족 제도에서 소가족 제도로 옮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위신은 나날이 떨어지고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위치도 흔들리고 있다. 그 대신 주부와 아이들의 권의 새로운 힘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돈의 힘이 다시없이 커졌다.
이같은 세태 속에서 노인이나 아버지가 체신을 지키고 권위를 세우려면 돈을 가졌든가 벌지 않으면 안된다. 고상한 뜻이 뜻을 잃고 소빈은 이제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고어화하고 있어 이를 코에 걸면 사람은 웃음거리가 되기에 안성마춤이다. 그래서 돈 가진 할아버지는 좀처럼 쌈지 끈을 늦추려 하지 말고 아버지들은 돈벌이를 궁리하게 된다.
돈과 인연이 없는 직업을 가진 학자나 예술가도 천직이라 믿었던 자기 직업을 일단 회의하게되는 경향이 많을 것이다. 장년의 가난한 이들 지식인은 이제 돈이나 권세를 위해 자기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한다.
이중에는 배추장사를 해서라도 가족들이 바라는 생활을 위해 돈을 벌겠다고 엉거주춤 털고 일어서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아내의 판단은 소중한 역할을 하게된다. 무슨 일을 당했을 때 허영심과 경박하고 감정적인 결단력만으로 남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주부들도 없지 않고 이때마다 일어나는 사회 부정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처럼 눈이 흐려졌던 아내들도 새해에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조언으로 남편의 체통과 사회의 곤란을 막을 것이라는 것이 68년 생활풍조의 주류가 된 것이다.
일류사립학교 일류중학교 일류대학 등 일류로 향한 어머니의 관심과 열의는 더 한층 커질 것이 예상된다.,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는 일류 교를 지원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능하고 어리석은 부모라 생각한다. 미국의 어머니나 일본의 어머니들이 한국에 온다면 한국의 어머니들보다 더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이른다. 이와 같은 불타는 교육열은 치맛바람으로 확대되고 아버지까지 동원되어 바짓바람으로 번져간다.
일류학교로 향한 치마와 바짓바람은 교육열이 아니고 자녀의 장래에 대한 일종의 보장욕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참은 일류병이나 이에 따른 비정상적인 입시준비의 연속은 이제 개인적인 양식에 호소해서 해결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고있다는 사실을 부모나 위정자는 잘 알고 있다.
왜곡된 교육을 거쳐 자란 아이들이 훌륭한 인간으로 자라거나 바른 일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입시제도 개선을 위해 추첨제나 구역제가 제의되었듯이 어떤 제도적인 개혁이 문제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편중된 교육열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 경력적으로 균형을 잃었던 가계와 주부들의 생활이 바른 방향으로 「키」를 돌리게 되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
중류 이상의 주부들은 여가 선용의 방법이 약간 달라질 것이다. 꽃꽂이나. 북화를 치는 취미생활에서 실생활과 결부되는 사회 참여에 노력하는 풍조가 일어날 것이다. 가정 생활에 직결되는 제도를 비롯해서 물가와 상품에 대해서 구체적인 발언과 제언을 부드러운 방법으로 전개한다. 67년에 「붐」을 이룬 「자선바자」를 토대로 구호사업에 보람 같은 것을 느끼는 주부의 수가 늘어갈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생활풍조는 생각지 않는 효과까지 거두게 된 것이다. 점차 심해지는 경제적인 상층과 하층의 차이라든가 거기서 빚어질 특전의식 또는 반감 같은 것을 완화시키는 억압을 하게될 것 같아서다. 선의의 관심과 유대가 서로의 마음속을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68년의 생활은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성의 힘에 의해 질서가 잡혀가는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 식자간에서 일치되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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