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협상 진통

중앙일보

입력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노사정위원회 협상이 아쓸아쓸한 산고(産苦)을 겪고 있다. 노사정위는 23, 24일 접촉했지만 시행 시기 등을 놓고 팽팽히 대립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몇몇 핵심 사안에 노사 간 입장 차가 워낙 커 합의안 노출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판이다. 반면 노사정위는 "대부분의 세부 사항에 이견이 없는 만큼 노사정 대표가 결단을 내릴 경우 언제든지 전격 타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복잡한 내부 사정이 주5일제 시행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노동계의 경우 협상에 참여하는 한국노총과 불참 중인 민주노총, 도입에 적극적인 일부 공기업 노조 등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영계 역시 경총과 전경련·중기협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진통 배경=국민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의견 조율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노사가 이해타산에 지나치게 집착해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한국노총에서 보면 합의 노출시 앞으로 대(對)정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협상 타결에 따른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합의안에 경영계의 의견을 상당 부분 담아야하는데 이 경우 노동계 내부나 일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노사정의 잠정 합의안에는 생리휴가 폐지 등 시민단체·여성계가 강력히 반발할 내용이 들어있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근로조건 개악 없는' 주5일제 도입을 주장하며 총파업을 선언해 한국노총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 산하노조 가운데 제조연맹은 '주5일제를 제조업을 고사시키는 위험한 제도'로 규정해놓은 상태다.

최근 법 개정이 안된 상황에서 사업장에 주5일제가 급속히 퍼지는 것 역시 한국노총이 협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산하노조들이 임단협을 통해 원하는 바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구태어 위험을 지고 협상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경총의 경우 협상이 지연되면서 재계의 협상 대표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전경련과 중기협이 경총의 협상 자세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기협은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제조업체를 고사시킬 우려가 있다며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했다.

노동부의 한 고위관리는 "당초 22일까지 협상을 타결짓고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으나, 노총과 경총이 막판에 '외부' 압박을 당하고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정부 대응=노동부는 월드컵 개최·지방선거 실시 등을 고려할 때 4월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법제화의 시기를 놓칠 것으로 보고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노총 지도부에 "민주노총과의 선명성 경쟁이 국익에 반하며 장기적으로 노동조건을 악화할 것"이라며 합의를 종용했다. 또 경총측에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5일제가 확산될 경우 올 임단협에서 사측이 불리한 입장에 놓일 것"이라며 결단을 촉구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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