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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율 결정의 자율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외환율 결정과정이 부분적으로 자유화하였다. 일체의 환율을 한은이 고시하던 종래의 환율결정방식으로는 실제를 반영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한은은 기준비율 각각 0·75%의 폭을 갖는 한은 집중비율 및 매도비율만을 공고하고 고객에 대한 매매환율은 외국환은행의 재량에 맡기는 방식이 새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환율결정방식의 채택과 더불어 정부는 국내거주자에게 외국환은행의 외환매입초과액 범위 안에서 원화를 대가로 외환증서를 발급할 수 있게 하였음을 주목하고 싶다.
박 기획은 이러한 새 환율결정방식을 도입하면서 물가상승률 만큼 환율이 오르는 것은 무방한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지나친 상승은 하향조작으로 막겠다고 밝혔으며, 서 재무는 환율의 상향조정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있다.
이러한 정부당국의 생각으로 보나, 환율결정방식의 내용으로 보나 앞으로 환율이 적당히 올랐으면 하는 것이 정부가 묵시적으로 기대하는 바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동안 환율과 물가의「갭」이 더욱 벌어져 수출이 정체하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수출정체를 막기 위해서 환율이 조정되지 않을 수 엾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이나, 그렇다고 수출증가가 유일무이한 경제정책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오늘날 환율이 안정되고 있는 이유는 지나친 외화도입과 연불수입에 따른 외환보유고의 이상팽창에 있는 것이다. 외환보유고의 이상팽창으로 통화금융정세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이제는 외환보유고를 적당히 감축시켜야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점과 관련해서 생각할 때, 환율의 상승을 은근히 기대하는 정부는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네거」제로 수입을 조장시켜 포화를 환수시키려하고, 때문에 수입금융제도까지 마련하는 일련의 정책은 환율의 상승으로 수입을 억제시키려는 환율정책과 정면으로 충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출이 정체하니, 이를 막기 위해서 환율은 인상되어야 하고 통화금융정세가 악화되었으니 수입을 권장해야하겠다는 따위로 즉흥적인 정책이 난무하게 될 때 경제는 오히려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정부가 기대한 대로 환율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가정한다면 그 여파는 심각할 것이다. 이 나라 산업구조로 보아 수입원료가격의 상승은 곧 물가전반의 상승을 유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환율과 물가의 악순환은 가속될 것이다. 이러한 환율과 물가의 악순환은 새로운 세제구조와 상승작용을 해서 더욱 악화될 것도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차관기업체의 원리금상환 압력을 가중시켜 물가상승을 자극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대불누증으로 더욱 통화금융정세를 악화시킬 것이다.
환율과 물가의 악순환이 촉발된다면 통화 금융 정세는 새로운 난국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가상승이 현저해지면 고금리로 흡수 동결시켜 놓은 저축이 구매력으로 해방되어 통화정세들 일변시킬 가능성조차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수출이 정체하니까 환율을 오르도록 해야겠다든 지 외환보유고가 늘어 통화금융정세가 악화되니 수입을 개방해야 하겠다든 지하는 따위의 정책은 미봉적인 즉흥정책에 불과해서 오히려 장기적인 교란요인을 누적시키는 정책에 불과하다.
오늘날 이 나라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일련의 모순은 모두가 지나친 정도로 성장을 위한 무모한 외화도입·연불수입·고율 투자정책 때문에 파생된 것이다. 고도성장정책을 조정시켜 외환 및 통화의 이상팽창을 막았던들 물가와 환율의「갭」이 오늘날처럼 확대되고 포화금융정세가 악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환율결정을 자율화시키고 일반국내 거주자에게 환투기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해서 오늘의 모순이 해결될 리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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