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아베노믹스의 스승과 제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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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호 29면

일본인 경제학자로는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 예일대 명예교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의 멘토다. 그는 1936년 태어난 노학자다. 바로 그해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대공황 극복 방안을 제시한 케인스처럼 하마다 교수도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경제를 되살릴 자신의 이론을 누군가 정책으로 채택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2008년 그는 희망을 본다. 일본 도쿄대 교수 시절 만난 제자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가 일본은행 총재에 올랐기 때문이다. 시라카와가 엔고와 디플레이션에 신음하는 일본 경제를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란 스승의 믿음이 있었다. 국제수지의 불균형은 화폐시장의 불균형에 의해 초래되고, 그 조정에는 금융정책이 효과적이란 논문까지 썼던 제자 아닌가.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하마다의 눈에 시라카와는 조직의 정책관이나 관행과 타협한 ‘노래를 까먹은 카나리아’로 변해 있었다. 답답해진 하마다는 공개서한을 띄운다. “시라카와 군! 제발 망각한 노래를 기억해 보세요.”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이번엔 공개 서한을 수록한 저서를 시라카와에게 보낸다. 책과 함께 돌아온 답은 놀랍게도 이랬다. “직접 사겠습니다.” 하마다는 지난해 말 이런 일화들까지 담아 『미국은 일본 경제의 부활을 알고 있다』를 펴냈다. 스승은 제자 시라카와와 일본은행의 정책을 돌팔이 의사의 엉터리 처방에 비유한다. 외국 석학의 말을 인용해 제자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아베는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던 지난해 11월 하마다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정권 출범 후에는 하마다에게 ‘내각관방고문’을 맡긴다. 스승이 나서자 시라카와는 지난 3월 물러났다. 5년 임기에서 딱 20일을 못 채웠다. 후임은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직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다. 재무성 출신으로 하마다처럼 일본은행 때리기에 열중한 인물이다. 그는 취임 후 ‘이(異)차원의 양적·질적 금융완화’를 발표했다. ‘그림자 일본은행 총재’ 하마다의 생각을 투영한 정책이다. 하마다는 구로다를 극찬했다. 가르침을 잘 따르는 학생이 왜 안 예쁘겠나.

시라카와라고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 차례가 넘는 양적 완화를 주도했다. 다만 하마다에겐 성이 차지 않는 수준이었다. “시라카와는 골프장 그린 너머에 절벽이 있을 거라 겁먹고 그린을 직접 공략하지 않는 소심 골퍼다.” 찔끔찔끔 돈을 풀다 보니 시장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스승과 제자는 이제 공수 위치가 바뀌었다. 제자 시라카와는 아베노믹스를 정면 비판하고 있다. “미국·유럽도 수년째 대규모 양적 완화에 몰두하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은 제자리이지 않으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행위는 엔화 신용도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다.”

스승과 제자 중 누가 옳은지 판정하는 건 세월과 결과다. 스승이 ‘제2의 케인스’가 될지, 제자가 청출어람이란 소리를 들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아베노믹스로 상처 입는 이웃나라들이 아무리 비명을 질러본들 일본 정부가, 일본은행이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란 점은 확실한 듯하다. ‘통화정책의 실패는 각국의 책임일 뿐’이라는 게 멘토 하마다의 신념이다. ‘일본이 조금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 아닐까 싶다. 국가부도 위기가 아닌 한 아베 정권 내내 돈 찍는 윤전기도, 돈 뿌리는 헬리콥터도 풀가동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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