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차라리 서울광장을 내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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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호 31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선 날마다 기묘한 공존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 한쪽엔 쌍용자동차 노조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침통한 얼굴로 농성을 벌인다. 무표정한 경찰들은 지켜본다. 지난해 4월 4일 쌍용차 희생 노동자 분향소가 차려진 이후 396일째 지속되는 장면이다.

 지난 1일엔 노동절 집회 참가자 일부가 ‘분향하겠다’며 대한문 앞으로 진출해 경찰과 충돌했다. 최루액까지 뿌려지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사흘이 지난 4일 대한문 앞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평한 분위기다.

 한 편의 시대 부조리극이다. 이런 장면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나, 서울시민들은 묻고 싶다. 분향소 길 건너편에서 이를 내려다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말이다. 박 시장은 그동안 오락가락했다. 지난해 4월엔 ‘서울광장 일부를 무단 점유했다’며 쌍용차 노조에 변상금 140만원을 부과했다. 그해 6월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지난달 4일 서울 중구청이 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다음 날 페이스북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겨울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라고 썼다. 중구청 측이 철거 현장에 만든 화단에 대해선 이렇게 언급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곳에 꽃이 피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당장 보수·진보 양쪽에서 비판이 나온다. 보수 쪽에선 ‘서울시장이 불법행위를 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진보진영은 '왜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느냐'고 탓한다.

 왜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일까. 박 시장은 전직인 인권변호사와 현직인 서울시장 사이에서 꽤 고민하는 것 같다. 아니, 미래의 대권 행보까지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그러니 나설 수도, 침묵할 수도 없을 거다. 인간적으론 이해가 간다. 하지만 보수·진보 모두 만족시키려 하다간 악수(惡手)만 둘 뿐이다.

 박 시장으로선 법에 따라 불법행위에 대처하는 게 상책이다. 그게 개인의 양심과 소신에 어긋난다면 노사 간 협상을 중재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있다. 이마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하지하책(下之下策)으로 분향소를 서울광장으로 옮기도록 하는 건 어떨까. 박 시장 스스로 “서울광장은 누구의 허가에 의해서가 아닌 누구나 나와,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마음껏 주장하는 곳”이라고 말했지 않았나. 서울시는 이미 지난해 점거(Occupy) 시위대에게 서울광장에서의 텐트 노점(노숙·점거)을 허용한 바 있다. 그때 일부 시위대처럼 술을 마시거나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 불허할 만한 이유는 없다.

 대한문 앞 분향소는 도로 교통을 방해하는 불법시설물이다. 그럼에도 박 시장이 지금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한 입장을 지킨다면 시정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젠 페이스북 글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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