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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이 저지른 역사 범죄에 주머니 털리는 국민들은 무슨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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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예산으로 갚는 과거사, 연 1340억’. 4월 29일자 본지에 보도됐던 기획기사다. 민청학련·인혁당 등 과거 국가가 민간인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배상 판결이 속속 나오면서 배상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계기로 최근 법조인 A씨와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눴다.

 A씨 : 과거 권력자들이 저지른 역사 범죄에 대해 후손들은 언제,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 : 인혁당 등 유신시대 범죄에 대해선 우리 모두 침묵한 죄가 있다.

 A씨 : 동의한다. 그러나 6·25전쟁처럼 특수 상황에서 벌어진 국가 범죄도 시효 없이 배상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일까?

 나 : 보도연맹사건(6·25전쟁 당시 우리 군경이 좌익 성향을 의심해 보도연맹원을 집단 살해했던 사건)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가범죄로 인정했고, 이미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A씨 : 최근 하급심에서 소송 제기를 위한 시효는 위원회 결정을 안 날로부터 6개월이 적당하다며 각하한 판결이 나왔다. 고등법원에선 3년으로 보는 판결도 나왔지만, 법적 안정성을 이념으로 하는 소멸시효제도의 취지를 살려, 시효 문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나 : 국가권력의 범죄는 시효를 따지지 않는다는 게 법정신 아닌가?

 A씨 : 그러기엔 60년도 넘은 일이라 불명확한 증거를 토대로 소를 제기하는 사례도 많고, 법원엔 이런 과거사 소송이 수백 건이나 걸려 있어 행정 낭비가 심하다.

 나 : 얼마 전엔 유족회가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리고 배상액 편차가 있는 걸 시정해 달라고 광고를 낸 걸 봤다.

 A씨 : 그래서 이 문제는 배·보상입법으로 일괄 배상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어야 한다.

 나 : 과거사정리위원회도 해산되기 전에 배·보상특별법을 제정하자고 건의했었다. 국회가 법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A씨 : 요즘 시골을 찾아가 소송 당사자들을 모아 기획소송하는 로펌도 있다고 한다. 국민 세금으로 변호사 업계에 큰 시장을 만들어 주는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다른 법조인 B씨는 “후손들의 교육 효과를 위해서라도 역사 범죄엔 시효를 따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 : 그러면 지금이라도 배상의 요건과 기준을 정한 법을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B씨 : 이미 너무 많이 와서 실효가 없다. 힘으로 국민을 핍박한 과거 ‘깡패 권력’과 입법을 깔아뭉갠 ‘직무유기 국회’가 후손의 주머니를 털고 있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권력의 깡패 짓에 눈감고, 그런 국회의원을 뽑은 게 국민이다 보니….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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