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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문제는 특권의식 … 그들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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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들은 왜 뻔뻔한가
아론 제임스 지음
박인균 옮김, 추수밭
300쪽, 1만5000원

맞다. ‘라면 상무’나 ‘장지갑 회장’과 같은 인물을 탐구한 책이다. 독선과 독설, 얌체짓과 꼴통짓을 일삼는 이들의 심리와 영향, 그 대처법을 이야기한다. 원제도 ‘골칫덩이들, 그에 관한 시론(Assholes: A Theory)’이다. (옮긴이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이를 가리키는, ‘Asshole’을 ‘골칫덩이’로 풀었지만 ‘꼴통’이란 표현이 더 실감난다. 개인적으로.)

 당연히 미국판 골칫덩이들의 일화가 눈길을 끈다. 신격화된 스티브 잡스는 장애인 구역에 주차하고, 회사의 자선사업을 막고, 동료들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입히곤 했다. 친구가 “그는 사회계약의 일반적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듯했다”고 할 정도였다.

 대권까지 꿈꿨던 전 미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는 부인이 암으로 병원에 있을 때 외도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랬다고 한다. “그 여자는 대통령의 부인이 될 정도로 어리거나 예쁘지 않아요. 게다가 암까지 걸렸잖아요.”

 미국 우파의 보루인 폭스 뉴스의 저널리스트들이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까지 다채로운 등장인물은 ‘골칫덩이’들은 어디나, 언제나 존재한다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만만한 부분은 딱 거기까지다. 책은 재미나 실용을 위한 책이 아니다. ‘꼴통 없는 사회로 가는 7단계’나 ‘꼴통과 어울려 지내기 10계명’ 등 대신 ‘도덕적 공정성’을 진지하게 파고든다.

 지은이에 따르면 골칫덩이의 특징은 도덕적 불감증이며 이는 뿌리 깊은 특권의식에서 나온다. 자신의 업적이나 지위 혹은 자신이 내세우는 대의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은 정당하고,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새치기나 다른 사람의 말 끊기 같은 사소한 것부터 미국의 필리핀 지배나 이라크 침공 같은 큰일까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저지르는 이유다.

 이들은 도덕관념을 모르는 건 아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면 흠 잡을 데 없는 조언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 또 주변에 분노와 반감을 일으키지만 물질적 부담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점에서 도덕개념을 알지 못하거나 아예 없는 사이코패스나 법적 경계를 뛰어넘어 해코지를 하는 무법자와도 다르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과 어울려 지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골칫덩이를 만나면 체념하기나 저항하기를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놈은 원래 그냥 그렇잖아”라고 넘기기는 쉽지 않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혐오, 분노, 응징 욕구를 억누르려면 상당한 노력이 든다. 비난하고, 심할 경우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골칫덩이는 충고나 반발을 흘려 듣고 절대로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은이는 골칫덩이를 설득하거나 교정하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골칫덩이는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보편적 문제의 하나이며 우리 사회가 ‘특권적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권의식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이를 부추기면서 자유, 기회, 보편적 번영을 약속하는 자본주의의 바탕인 ‘협력적 관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경제는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사유체계 내에서만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법·계약·과세 등의 관습과 제도가 필요한데 이를 지키지 않는 골칫덩이가 늘어나면 협력적인 보통사람들도 이를 유지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 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책은 ‘라면 상무’나 ‘장지갑 회장’이 단지 몇몇 튀는 인물들의 혀를 찰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세를 보여주는 ‘징후’로 읽어야 마땅하다고 일깨운다. 시류에 맞추느라 서둘렀는지 ‘veteran(퇴역군인 또는 참전용사)’을 ‘복원병’이란 희한한 용어로 옮기는 등 읽기 불편한 대목이 있긴 하지만.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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