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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앞으로의 반세기 양호민<평론가>|볼셰비키혁명50년의 소련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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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앞으로 반세기후의 소련은 과거 반세기의 소련의 발전과정을 분석하는데서 전망되어야하지만 그러한 분석은 이 소고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다만 여기서는 「흐루시초프」의 소위 「자유화정책」에 수반된 여러가지 현상들을 염두에 두고 파멸적인 전면핵전쟁이 발발하는 일 없이 동서대국들간의 평화적 공존이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몇개의 문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자타가 공인하고 있듯이 소련은 10월 혁명 후 50년에 미국 다음가는 세계 제 2위의 공업국가가 되었다.
중공업 우선의 방향과 노동대중으로부터의 잉여가치수탈을 통한 「사회주의적 원시축적」의 방법은 1928년의 제 1차 5개년 계획 이후 일괄하여 추구되어 왔다. 외자의 도입 없이 이윤획득의 자극을 무시하고 급「템포」로 후진 「러시아」를 공업화하려는 「스탈린」의 위로부터의 산업혁명은 소련의 대중에다 참기 어려운 인간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강제에 요청되는 강력한 권력은 「소비에트」 정권을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소외된 전체주의적 폭정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식 계획경제 - 중앙 집권적 명령 - 경제는 각국공산당들이 「사회주의」 건설의 원형이 되어 왔다.
오늘 소련에서 조심스럽게 시험되고 있는 이른바 「리베르만 방식」은 종래의 기업경영권을 국가관료로부터 전문가의 손에 넘김으로써 능력을 높이자는 데 그 핵심이 있다. 보다 높은 생산능률과 생산품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이윤동기가 이용되고 경제행정이 분권화하고, 제한된 자유시장원리가 채택되어 소비자와 농작물이 양적 질적으로 높아질 것은 충분히 예견된다. 그러나 일부에서 오해하듯이 이것이 곧 자본주의에로의 복구를 뜻하는 것도 아니요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 경제」에로의 급격한 변화도 아니다. 원자과학의 발전에 의하여 생산력이 고도로 높아지고 소비재가 풍부히 생산된다고 해도 「소비에트」형 계획경제체제자체가 소멸하고 주식회사와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무계획적 자유 생산이 부활한다는 것은 「소비에트」의 국가 권력자체가 붕괴하지 않는 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수정과 변화는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소련의 계획경제의 낭비성과 비능률을 지적하고 있지만 적어도 소련의 지도층은 가장 어려운 상태에서도 자국체제의 우월성을 믿어왔으며 이러한 신념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정상화되어 왔다. 소련의 경제제도는 혁명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는 일정한 성격을 가지는 기성체제로 공고화되었으며 여기서 기득권을 우리는 사회적 지배 계층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제한된 자유시장 원리 채택>
사정은 집단농장의 경우에도 유사하다. 농촌의 강제적 집단화는 「스탈린」주의의 기본적 특징이 하나요, 농민의 완강한 반항을 물리치고 「러시아」농민의 90%이상을 집단화하는 과정에서 수백만의 인명이 말살되고, 투옥·추방·행방 불명 되었다. 「레닌」은 1923년 「협동조합 + 소비에트 = 사회주의」라는 공식을 제시한바 있지만 여기서 협동조합이란 「스칸디나비아」형의 일반적 협동조합이었다고 한다. 소련의 집단농장이 사회주의의 이상으로부터 얼마나 거리가 멀며 얼마나 능률이 저급한가에 대한 비판은 무수하고 동구 공산국가들의 경우 초기의 급진적 집단화는 해체되어 지금은 농지면적의 50%전후가 개인농으로 복귀한 상태에 있다. 「흐루시초프」는 농업생산능률을 높이기 위해 손수 경작법을 시범하고 「트렉터」 - 기계 임대소를 해체하여 이것을 농장에 불하하고 사경지를 확대하는 등 많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소련농업은 여전히 저위에 있다.
미국의 경우 전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농민의 생산으로 높은 수준의 국민소비를 충족시키고도 외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는 6%의 농촌인구가 전 인구에 필요한 곡물의 반을 생산하고 있지만, 소련의 경우는 총인구의 56%를 점하는 농민들의 생산으로도 아직 여유있는 식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브레즈네프-코시긴」의 신 정권은 농민들에게 파는 기계 자동차 부속품 등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사경지의 폭을 넓히는 등 다각도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소비에트」 농업의 정체를 구조적 개혁에 의하여 타개하려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개혁을 막고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에서 오는 공식이다. 즉 「소비에트」의 국정 「이데올로기」는 「콜포즈」를 「소비에트」 사회제도의 기본적주석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흐루시초프」이후의 소련지도자들은 비 「스탈린」화 운동을 강제적 집단화에 대한 비판까지 몰고 나갈 의도를 보이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 제도의 「이데올로기」적 방어를 강화하고 있는 터이다. 요컨데 소련의 집단농장도 이미 전통적 제도로 화했으며 앞으로 계속될 농업개혁도 집단화의 테두리 안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하는 운영상의 기술적 개혁이 될 것이다.
「스탈린」 이후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소련의 공업화가 추진됨에 따라 필연적
으로 정치적 「자유화」가 증대하고 철학 문학 예술 사회과학 등 문화부문에 대한 당의 통제가 크게 완화되어 결국 「소비에트」사회에다 질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이다.
현대기술이 「소비에트」의 공업발전에 가하는 박차를 부인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우주과학에서 미국에 육박한 소련의 과학기술능력이 소비재생산과 국민대중의 물질적 복지향상에서는 수십년 후에도 서방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무능만을 노증한다고 볼 근거는 희박한 것 같다. 대중의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향상됨에 따라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자유를 희구하는 국민의 욕망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회복 어려울 당내 민주주의>
「흐루시초프」 이후에 나타난 정적들에 대한 유혈숙청의 소멸, 「파스테르나크」「솔제니츠·시냐브스키」 등으로 상징되는 반 당노선의 문학 출현, 비밀 경찰의 축소, 공포 분위기의 부분적 해소, 자연 과학에 대한 「이데올로기」, 통제의 완화 등 일련의 현상은 「스탈린」시대에는 몽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소련이 서구화하고 있다는 확인으로는 될 수 없다.
일당독재를 국가존립의 원칙으로 삼고 정치체제가 그렇게 공고화된 나라에서 정치적 문화적 자유화 현상을 체제자체를 전복할 정도에 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정치 심리상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독재정권으로부터 받는 조그마한 「양보」들이 양적으로 집적되어 질적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부인할 수도 없다. 「스탈린」 시대에는 철칙으로 되어 있던 1인 입후보를 민주주의의 부정이 라고 반박하는 의논이 소련학계에서도 들려 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레닌」 시대에 존재했던 「당내민주주의」조차 소련에서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반대파의제도 보장 없을 터>
공산당 내에서는 물론, 당 외에서도 반대파의 조직이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 국외자는 소련사회의 자유화에로의 변화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자유가 없는 것에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문화적 자유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파의 합법적 존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비에트」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수정 내지는 재해석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현재로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소련의 「이데올로기」는 앞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이탈하지 못할 것 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다양성을 지닌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함으로써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나중에는 복수공산당의 경쟁에 의하여 「소비에트」국가를 운영할 개연성은 예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자본주의적정당이 출현하게 되리라는 사태는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며, 소련사회가 민주화된다고 해도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에서요, 혁명이 없는 한 소련이 미국으로 변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가 영속화되고 전쟁의 가능성이 멀어지면 질수록, 소련에서 민주적 요인이 성장하리라는 것은 전망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중공에서 통제하는 계획경제의 기반은 그대로 존속할 것이요, 모든 변화는 「마르크스」주의의 포기가 아니라 그의 새로운 해석에 의하여 합법화 될 것이다.
① 정치·경제·사회... 문회의 변모 ... 양흥모
② 볼셰비즘의 발전과 변화 ... 신상초
③ 소련경제의 변질과정 ... 조동필
④ 소련, 앞으로 반세기 ... 양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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