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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결정의 자율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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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미간의 경제협조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박기획과 서재무는 신문기자회견을 통하여 재정안정 계획을 비록한 제반경제정책의 입안집행 과정에서 외국의 간섭을 받아서는 아니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앞으로는 독자적으로 정책을 추구해 나가겠음을 밝혔다.
정부의 이와같은 태도표명은 주권 국가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데 이론의 여지는 없을줄 안다. 아무리 국제 협조의 시대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남의 원조를 받고는 있다하더라도 국가이익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외국의 용훼를 받아서는 아니되겠기 때문이다. 국제협조는 어디까지나 상호 이익 증진시키기위한 것일뿐만 아니라 상호간의 주권을 존중하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성질의 것이므로 국내정책의 자율성은 침해되어서도 아니되겠거니와 포기될 수는 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호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협의하고 양보하는것까지 내정간섭이라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국수주의에 불과한 것으로서 고립주의의 모순을 자초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박기획이나 서재무가 선언한 정책결정의 주체성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동안의 한·미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문제는 미측과 재정안정계획에 합의하고 농산물매상가격책정을 협의하고 있는 따위의 것을 내정간섭으로 보느냐 아니면 상호이익을 위한 협조와 양보로 보느냐하는 인식의 차원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협의를 허용하게 되는 연유가 원조협정에 따른 것이라면 원조를 받는다는 이익을 위해서 정책협의를 약속한 우리의 선택적 행위라는 데에도 이론이 있을수 없다. 이러한 우리의 선택을 내정간섭이라고 못박을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정부당국은 신중한 검토가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원조를 받아오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며 미국은 원로를 제공함으로써 이익을 얻기 때문에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상호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원조에 따른 정책협의를 반드시 내정간섭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정책협의가 우리의 국가이익을 도외시하고 미국의 이익만을 도모하기 위한 간섭이 아닌바에야 그것을 간섭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정부는 항상 안정을 희생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확장정책을 밀고 나가려 했고 이에 대해서 미측은 안정을 우선시키고자 정책적인 「브레이크」를 걸어왔던 것이다. 이번에 박기획이나 서재무가 정책결정의 주체성을 들고 나온것도 따지고 보면 재정안정계획상의 연말통화량한도를 지킬수 없기 때문에 나온것이라고 우리는 평가하고 싶다. 연말 통화량을 지킬수 없을 만큼 무리한 통화증발을 감행해 놓고 그를 합리화시키고자 계획수정을 요청하는 따위의 무모를 거절했다고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한다면 선의의 국제 협조조차 거절하는 어리석음밖에 남을 것이 없다.
우리의 국가이익을 손상시키는 간섭을 배제한다는 것은 당연하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협의마저도 간섭이라고 못박는 어리석음이 있어서는 아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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