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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지주회사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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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나친 외자도입으로 포화금융 정세가 악화되고 금융질서가 교란되고 있음은 공화당조차 지적할이만큼 심각한 것이다.
재무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시키고자 금융제도를 개선할 생각으로 있다하며 한은법·은행법·산은법 등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한다. 오늘날의 포화금융정세악화가 금융제도의 결함에서 연유되는 젓이 아니고 고도성장·과잉외자도입 정책에 기인된 것이 분명하다면 금융정세의 악화를 제도개선으로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다른 암묵적인 지적이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는 것이며 이런 뜻에서 산은법 유정방침을 우리는 주목하고 싶다.
재무부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산업은행법을 개정하여 산은으로 하여금 현존업무 외에도 지주회사의 기능을 갖도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명분이야 정부관리 기업체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외자기업체의 감독을 강화시킨다는데 있는 것 같으나, 정부가 직접 관리해도 불합리한 경영을 시정할 수 없었던 것을, 하물며 지주회사가 소기한대로의 목적을 달성하리라고 믿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산업은행을 지주회사로 만드는 저의는 딴데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5·16직후에 산업개발공사안이 제기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상기하고 싶다. 산업개발공사가 개발자금을 전담하고 그로써 계획투자 및 계획사업을 정부가 직접 지배해야만 개발효과가 빠르다는 생각에서 산업개발공사안이 나왔던 것이나 이제 그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지주회사 안이 재무부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관리 기업체가 하나같이 부패·무능의 상징처럼 되고있는 오늘의 실정에서 정부지배 기업을 확대하는 것이 결코 국민경제의 효율을 높일 수 없다는 현실적 타산을 논외로 한다하더라도 지주회사안은 위험한 조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 경제의 기본질서는 사기업체제를 주축으로 하여 사회간접자본 분야에만 정부의 관여를 허용하는 자본제인 것이다. 이러한 기본질서와 차원을 달리하는 인도의 사회주의제도를 모방하려는 지주회사안은 현존헌법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지주회사로 산은법이 강화된다면 정부의 자의하나로 융자받은 기업은 언제나 정부관리기업체로 전락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놓일 것이다.
지주회사라는 편리한 장치는 필연적으로 사기업자유의 원칙을 부정하게 될 것이며 이 나라의 주요기업은 실질적으로 국유화할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반대로 지주회사제도를 사적치부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간단히 보아 넘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연체·대불 등이 누적되는 부실기업의 이자를 면제해 주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융자를 투자로 전환시켜줌으로써 지정기업에 치부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지주회사안은 부패와 무능을 오히려 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금융교란의 원인이 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자본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새로운 부패를 조장할 지주회사안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사고방식을 마땅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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