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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자료의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10월21일부터 시작된 내년도예산심의를 위한 일반국정감사가 내일로써 마감된다. 삼권의 분립과 상호견제를 전제로 해서만 건전하게 기능할 수 있는 국정감사에 있어서 야당이 감사에 불참한다면 감사의 의미가 상실된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여당만의 단독국회가 실시하는 변칙적인 국정감사가 심히 부당하다는 것을 계속 지적해 왔던 것이다.
그동안의 국정감사의 실지 진행 상황을 보면, 공화당국회와 공화당행정부가 국민이 바치는 세금을 가지고 정치적인 밀월여행을 하고있는 감이 짙어 도시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을 하기 위한 국정감사였던가 하는 의구를 자아내게 한다.
일반국정감사의 목적이란 행정부의 예산집행 상황을 국민의 입장에서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국정상의 결함과 정책상의 과오, 그리고 행정부의 비위를 샅샅이 들추어내고 신년도예산편성에 있어서 그 시정방향을 제시하자는 데 있다.
그리고 입법부가 국정감사 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나 감사에서 얻은 결론을 되도록 널리 공개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그에 수반된 애로는 무엇이고, 저질러진 과오가 무엇인가를 주지시켜, 대중적 민주적 계의를 통하여 그 시정방향을 찾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부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은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이번의 국정감사는 그 중 어느 하나라도 감사목적을 달성코자하는 노력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은 국민적 입장에서 보면 국정전반이 짙은 안개 속에 파묻히고 만 감을 씻을 수 없다. 선량하고 유능하며 국민의 깊은 신뢰를 받는 정부일지라도 행정권의 행사를 민주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관이 없는 경우에는 독선에 빠져 부패하기 쉽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정기적으로 국정전반에 걸처 감사를 실시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데, 집권당만의 국회가 같은 당이 장악하고 있는 행정부의 부정부패나 비위를 들추어내기는커녕 한술 더 떠서 이를 은폐 또는 비호하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그 정부가 깨끗해지고 유능해질 수 있겠는가. 이번 국정감사가 반드시 그렇게 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가 감사다운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은 국정을 바로잡기 위하여 행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자료제공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행정부는 각 부처단위로 「행정백서」같은 것을 공표해서 예산집행상황, 당면한 제반 애로, 정책상 과오로 자인하고 있는 점 등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대중이 국정을 알고 그에 내포된 문제점들을 토의할 수 있는 자료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자기변명이나 자화자찬에 시종할는지도 모를, 이런 문서를 발표해 보았댔자 국정시정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고 반문하는 견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정부가 성의를 다하여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국민은 비밀의 「베일」속에 갇혀있는 국정을 어느 정도까지는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간접민주정치의 기능이 마비되면 직접민주정치의 요소를 도입하여 이를 보완토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도일 것이며, 부정부패는 비밀과 암흑 속에 파묻혀 둘 것이 아니라 백일하에 그것을 밝혀내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가셔질 수 있다. 국민의 신임지속을 집권의 조건으로 삼는 정부라면 자신의 약점을 국민 앞에 제시하고 대중적인 비판을 받게되는 것을 겁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자진해서 당면하고 있는 애로와 정책상의 잘잘못을 공개하는 것이 아마도 현명한 길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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