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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맨 처음 게를 먹었던 용기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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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얼마 전 주일(駐日)대사로 내정된 이병기 여의도연구소 고문을 만났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대사로 내정된 직후 한·일 관계의 현안을 챙겨 봤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그가 20년 전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할 때 본 양국 현안이 여전히 현안이었기 때문이다. 현안이 역사와 영토 문제를 가리킴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중·일 관계 역시 같은 현안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의 역사 인식과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尖閣)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그것이다.

 2008년 일본 자위대의 항공막료장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가 한 잡지사의 현상 공모에 응했다. 글에서 그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상대의 양해를 얻지 않은 게 아니며 중국 공산 세력이 촉발한 데 따른 단순 대응이었다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그럼에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해 중·일은 1978년 평화조약 체결 시 ‘영유권 다툼은 뒤로 미루고 자원은 함께 개발하자(<64F1>置爭議 共同開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주장에 따라 현상을 유지해 왔다.

 한데 일본이 지난해 가을 중국 공산당이 정권 교체에 몰두하는 틈을 타 현상 변경을 시도했다. 일본 시민에 의해 사유화돼 있던 댜오위다오를 일본 정부가 사들이는 방식으로 국유화를 단행했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여파가 당초 5월 말로 추진되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의 연기다. 저간엔 중국 측 요청이 있었다. 중국은 두 가지를 고려했다. 첫 번째는 중·일 고위층 접촉을 거부해 일본에 압박을 가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이미지 관리다. 극우로 치닫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13년은 동아시아에 새 판이 짜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 해다. 한·중·일 3국의 리더십이 모두 새롭게 출범해 휘청거리는 유럽과 미국을 제치고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를 열지 않겠나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전혀 딴판으로 흐르고 있다. 20세기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21세기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난주 일본의 각료 3명과 국회의원 168명이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떼 지어 참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 학자 허샤오쑹(何曉松)은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총리 신분으로 신사를 참배하는 건 곧 침략 전쟁의 역사적 책임을 벗어던지고 군사적 강국의 꿈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베가 고이즈미를 닮고 있다.

 아베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낸 데 이어 “침략의 정의는 어느 쪽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며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가 하면 평화헌법 폐기도 노리고 있다. 중국 민간에서 빚은 돈으로 갚아야 하고 살인자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20년 뒤에도 한·일과 중·일은 지금과 똑같은 현안에 갇혀 다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한 가지 주목할 일이 있다. 4월 초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리샤오린(李小林) 회장의 일본 방문이다. 그는 리셴녠(李先念) 전 국가주석의 딸이다. 동갑내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는 어릴 적부터 막역한 관계다.

 그런 그가 시진핑의 국가주석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 동행한 뒤 곧바로 일본을 찾았다. 겉으론 ‘중·일 당대 명인 서화전’ 참석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방일 기간 내내 일본의 지중파(知中派) 정치인들을 챙겼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 등이 그들이다. 후쿠다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와 야구를 함께하는 등의 신뢰 외교로 고이즈미가 얼려 놓은 중·일 관계를 해빙(解氷)시켰다. 하토야마는 중·일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 동중국해를 ‘우호의 바다’로 만들자고 외쳤던 인물이다.

 리샤오린은 방일 기간 중·일 우호 회복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게를 맨 처음 먹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는 루쉰(魯迅)의 말을 인용했다. 이 말은 중국 고대 우(禹)임금의 치수(治水)와 관련이 있다.

 갑각류인 게는 겁나는 집게 다리를 가진 데다 보기 또한 추했다. 밭고랑에 구멍을 내고 사람을 물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우는 장사 파해(巴解)를 보내 강남의 치수를 맡겼는데 그는 고랑에 끓는 물을 붓고 그곳으로 게를 유인해 일망타진했다.

 한데 죽은 게의 몸이 빨갛게 변하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파해가 먹어보니 일품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파해의 이름 해(解) 아래 벌레 충(<866B>)을 넣어 게 해(蟹)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두렵고 추한 게를 인간이 처음 먹으려 했을 땐 큰 용기가 필요했듯이 중·일 관계를 회복하려는 이 또한 이에 준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한·일 관계가 일본 지도자들의 그릇된 역사관으로 출발부터 꼬이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방일을 취소했다. 정부 차원의 대응은 단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맨 처음 게를 먹는 용기를 가진 이들도 나와야 할 것이다. 일본의 일부 우익 정치인과 일본의 양심(良心)을 구분해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때론 시간이 해결의 열쇠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