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기득권 위한 노사 담합은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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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채필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인도 고대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설화를 하나 소개한다. 신과 사람과 악마가 지혜의 스승인 프라자파티(천둥)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프라자파티는 각기 “다(da)”라는 한 음절로 답했다. 신은 “절제하라(담야타)”로, 사람은 “보시하라(다타)”로, 악마는 “자비하라(다야드밤)”로 각각 달리 이해했다. 신과 악마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인간이 이기심과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신처럼 수고와 고통이 없고 쾌락이 넘치는 삶을 산다면 그 쾌락에 지나치게 몰두할 우려가 있으니 절제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모으고 소유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만약 인간이 악마처럼 잔인하여 남을 모욕하고 해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면 자비를 배워야 한다.

 지금 시대의 요구는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즉, 자기 실력으로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부여되고 제대로 대접받게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한쪽에서는 그들만의 성을 쌓고 빗장을 걸어놓고 있다. 어느 기업의 정규직 노조와 회사는 정규직 채용 시 일정 인원을 자녀 몫으로 할당하고 가산점까지 부여하고 있다. 일자리 세습의 고리를 이어가는 현대판 음서제다. 이에 분노한 사내도급 근로자들이 희망을 잃고 ‘내 자식에게는 비정규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분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법에서 보장한 노동권은 노사 간의 교섭력에 불균형이 생겨 근로자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힘이 모자라는 쪽에 균형점을 갖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이것이 노동법의 본질이요, 대전제라고 할 때 과연 문제가 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약자를 위한 연대와 단합의 정신으로 취약계층을 포용하며 공동체가 선순환하도록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고 노동권을 부여할 당시의 초심은 도외시한 채 이런저런 구실로 소탐대실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사가 담합하는 것은 약자의 이름을 팔아 노동권을 남용하는 것이며 감추어진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진주의료원 문제도 그렇다. 어느 누가 공공의료 서비스의 위축을 바라겠는가? 그러나 그동안 진주의료원 노사는 각자 해야 할 역할을 다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사회 있는 곳에 문제가 있고 문제가 있는 곳에 대안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서민의료 확충을 위해 의료서비스 개선과 필요한 경영혁신을 위해 서로 앞장섰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공공기관이 운영에 있어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기도 한다.

  최근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내놓은 한국보고서는 한마디로 ‘멈춰버린 한강의 기적’이다.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는 생생한 현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다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15년 전에 국가 부도의 위기를 맞을 뻔했다. 그 위기를 온 국민이 고통을 감내하며 이겨냈지만 또다시 힘든 시기가 온다면 그때만큼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부디 두 번 다시 그런 위기가 오지 않도록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노와 사가 내 몫 ‘챙기기’가 아니라 내 몫 ‘다하기’로 절제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으로 보시하며, 상대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호 금도를 지키는 노사관계를 통해 일자리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이채필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