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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보상금 산출 나선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 "정부에 최소 1조2000억 요구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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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교동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TV를 통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긴급성명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개성공단 근로자 전원 철수를 발표한 26일 저녁 서울 무교동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처는 일순간 적막감에 휩싸였다. 정부의 결정을 TV로 접한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단은 문을 닫고 긴급 이사회에 들어갔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정부로부터 50년간 재산권 보장을 받고 개성공단에 들어갔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장도 “정부 결정은 충격적”이라며 “오늘의 개성공단을 이루기 위해 지난 10년 가까이 피땀 흘려 노력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보상문제에 대해선 “차후에 생각해 볼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정부의 철수 방침에 따라 입주 기업 중 규모가 큰 업체들은 생산물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시계를 생산 중인 로만손은 “공단 폐쇄가 현실화하더라도 중국 공장에서 대체 생산이 즉시 가능하다”며 “시급한 거래 주문은 생산처를 바꾼 상황”이라고 밝혔다. 의류업체 신원은 급한 주문 물량은 베트남·미얀마 등 해외로 돌리고 있다. 소규모 업체는 현지 철수에 착수했다. 권영철 ㈜풍양상사 대표는 “직원 1명이 남아있는데 바로 철수를 지시했다”며 “27일 개성에 있는 승용차 한 대에 남아있는 완제품을 최대한 많이 싣고 나오겠다”고 말했다.

 물밑에서는 출구전략도 모색하기 시작했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 기업 123개 업체 중 96개사는 각 기업당 최대 70억원까지 받을 수 있는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해 있다. 문제는 보상 규정이 총 투자금액의 95%가 아니라 잔존가액의 95%로 설정돼 있어 9년간 공장 가동에 따른 감가상각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에서 청바지를 생산하는 박윤규 화인레노 대표는 “보험료를 받더라도 기업이 받게 될 보상액은 희망금액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며 “중견업체와 달리 중소기업은 기업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경협보험과는 별도로 정부에 요구할 피해보상금을 산출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정에 정통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입주기업 사장들이 공단 정상화에만 목을 맬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이미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변호사·공인회계사와 함께 손실 금액 산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결정대로 모두 철수한다면 최소 1조2000억원 이상 피해액 보전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비용에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현지에 투자한 비용뿐 아니라 이번 조업중단 사태로 인해 발생한 거래 중단, 납품계약 지연에 따른 배상금까지 포함돼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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