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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사시에 붙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신문부재」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신문이 숫제 없어졌으니, 신문부재라는 말이 성립된 것은 아니다. 신문이 있기는 있되,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었으니 없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나 하는 뜻에서 이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신문이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신문이 신문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요, 도시 신문이란 믿을 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하 우리사회의 신문부재 상황은 어떤 형태로 지면제작에 노출되고 있는가? 필자는 이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보고 싶다.
①의식적인 허위보도 조작. -일반적으로 신문보도가 70%정도 진실을 반영하면, 그 신문은 성실한 신문, 좋은 신문이라 볼 수 있다. 신문이란 촌각을 다투어 「뉴스」를 추적하고, 취재하고, 정리하고 보도해야하는 까닭으로, 선의의 제작자가 최선을 다 하는 경우에도 빈·허·진·위가 엇갈리는 부정확성을 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독자들도 신문의 허위보도가 고의에서 나온 의식적 조작이 아닌 한 이를 관용해준다. 그러나 신문보도의 50%이상이 거짓말이고, 나머지가 간신히 진실을 반영하는데 불과하다면, 또 그 허위보도가 고의적 조작이나 심한 태만에 유래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 신문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불행히도 우리사관신문은 그런 위험한 고비에 다다르고 있다는 징조를 지금 나타내고 있다. 6·8선거 이후 지금까지 백여일간 일간지의 정치면을 유심히 검토해 보시라. 분명히 진실보다 허위가 더 많이 담아져있다고 보는 것은 결코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정국을 일정한 방향으로 몰고 나가겠다는 신문의 주관적 원망(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건 타의에 의한 것이건)이 정치면 전체를 지배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혹은 허위를 조작해서 보도한 흔적이 농후하다. 그 결과 『「저널리즘」이란 으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은근히 사회를 지배해가고 있는 중이다. 통탄을 금할 수 없는 노릇이다.
②「데마고기」와 「신문깡패」.
-불편부당을 구두선처럼 외치는 신문이라 해도 현실정치와의 관련에 있어서는 친여 아니면 친야 혹은 중립의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가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요, 반드시 못마땅한 것도 아니다.

<신문깡패의 감도>
그러나 우리나라 신문 가운데는 자신의 권위를 과대망상하는 나머지 스스로를 정치집단으로 착각하고 행세하는 자마저 있다, 이런 신문은 사회사상을 주로 자신의 정치적인 동기나 목적에 따라서 다루어 나간다. 평소 비위에 거슬리던 어떤 개인이나 집단 혹은 정부기관이 잘못을 저질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이 종류의 정치신문은 온갖 수단을 다해 격심한 공격을 퍼붓고 상대자의 사회매장과 정치적 굴복을 강요한다. 금일, 금주-아니 수개월을 두고 특정사건으로 과잉 보도하여 그 신문이 매장코자 하는 인물이나 집단의 허점을 찔러 사회적인 증오감을 조직적으로 선동한다. 그 공격방법은 자못 치열, 또 악랄하여 인신공격, 인권유린, 명예훼손 등 신문제작의 「터부」를 일체 안중에 두지 않으니 족히「신문깡패」란 말이 나올만하다.
그러한 신문제작의 「히스테리」적 발작이 결정에 이르면 「아지·비라」인지, 신문인지 구별키도 어려운 지면을 만들어서 독자에게 전한다. 그래도 여전히 사회적 심판만은 무서운 것인지, 정치적 동기의 「데마고기」를 사회적 공적으로 애써 위장해 나가려 한다.
하늘을 대신해서 불의를 치는 것처럼 모든 신문이 그 실을 공적에 빙자하여 사원을 풀고 사회정의에 빙자하여 자체 권익옹호에 급급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저널리즘」이 주는 사회적 해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심각한 것이다. 자신을 정치집단으로 착각하면서 행동하는 사이비 신문은 차라리 언론기관 행세를 그만두고 정당 내지 압력단체로 공개 발족하는 것이 떳떳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깡패」는 「무장깡패」「주먹깡패」「신문깡패」로 3대별 할 수 있는데 합법적 거점에서「데마고기」를 일삼는 「신문깡패」야말로 가장 나쁜 해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③「센세이셔널리즘」과 독자우롱. -거금 30여년전 일제하 민족지도 매일12면 이상의 지면을 공급했거늘, 「뉴스」량이 몇갑절 늘어난 지금 이 시대에 매주 4면 3회, 8면 3회의 신문을 내면서 「일간지」랍시고 행세한다는 것부터가 국가적으로 창피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다가 독자로서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슨 엽기적인 사건이 생겨나면 대중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대개의 신문이 연일토록 지면의 태반을 거기에 할애하여 이여의「뉴스」보도를 희생시키는 악습이다.

<균형감각을 의심>
지난9월초 양모 광부매몰사건에 관한 신문의 보도자세를 재검해 보시라. 1인의 생명을 사지에서 구출키 위해 신문이 과잉보도경쟁을 벌이는 것까지는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양씨가 생환한 다음날인 7일에 나온 석간지마저가 어떻게 이 사건을 「토픽뉴스」로 1면과 3면의 거의 전면을 할당할 수 있겠는가. 구문에 속하는 「뉴스」를 과잉 보도한 탓으로 대개의 신문이, 바로 그날 생겨난 경원선 폭파사건이나 「홍제동 과부살인혐의자」석방기사를 지극히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얕은 「휴머니즘」의 입장에서더라도, 보도의 사회적 가치로 보아, 비중이 훨씬 더 큰 사건을 유야무야로 취급했다는 것은 분명히 독자를 우롱하는 것이요, 편집자의 균형감각의 건전성의 여부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가면이 적을수록 신문은 이를 유효 적절히 활용하여 독자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뉴스」를 고루 제공해 주어야한다.<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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