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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9월의 제3화요일은 「유엔」정기총회가 열리는 날이다. 1백22개의 가맹국대표들은 「뉴요크」「이스트·리버」 하반에 모인다. 이 집회를 「국제연합총회」라고 부르게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연합국의 인민은 우리의 일생동안에 두차례나 말할 수 없는 비애를 인류에게 준 전쟁의 참화로부터 다음세대를 구하기 위해』(헌장서두) 모인 것이다. 60년의 총회장에서 구두를 벗어 던졌던 「흐루시초프」(소련부수상)까지도 『그 연단에 올라서서, 장내를 굽어보면 자기가 어떤 숭고한 책임 있는 회합에서 연설하게 된 것을 깊이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번 가을에 어느 때없이 외교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맞았다.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북괴의 부도덕적「테러」행위를 고발하는 일이다. 휴전선의 침해, 철도폭파 등의 도발은 단순히 우리의 보복으로만 중지될 문제는 아니다. 북괴의「테러」는 바로 「유엔」의 권능에 모욕을 주는 일이며 오히려 도전하는 행위이다.
한국의 「업저버」들은 이것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단순히 「유엔」의 동정을 구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평화의 조건을 침해하려는 공산주의의 비도덕을 고발해야 할 것이다. 평화의 조건은 한 국가의 「모럴」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다. 「유엔」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존재하는 국제정치의 무대이다. 「유엔·시즌」이 되면 위로출장 겸 「유엔」대표단을 구성하는 경향은 이런 때일수록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외교는 철저히 흥정이며 그 흥정은 설득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런 계략적인 「팀·워크」가 되어있는지는 지금부터 눈에 띌 것이다. 「이돈」(전 영 수상)은 그의 「회고록」에 인상깊은 이야기를 남겨놓고 있다. 『행동에는 두가지 기준이 사용되고 있다. 그 하나는 법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자유제국의 기준이며, 다른 하나는 타국에 대하여 제제를 시끄럽게 요구하면서도 자국의 행동에 「유엔」의 권위를 주는 것을 거부하려는, 그러면서도 모순감을 느끼려 하지 않는 공산주의제국의 기준이다』「유엔」이 북괴의 「테러」를 어느 기준을 받아들이느냐는 문제는 우리 「업저버」들의 수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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