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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는 진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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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찰스 다윈. 그는 친절하며 온화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친절한게 흠이 될 정도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윈은 계속해서 적그리스도로 욕을 먹었다. 최근의 다윈주의와 무신론간의 평형은 오하이오주에서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공립학교 이사회원들 중 일부가 생물학 교과과정 지침에서 자연선택이론을 격하시키길 바라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다윈의 이론은 교실 칠판에 지적설계이론(Intelligent design theory)이라고 불리우는 개념과 나란히 적히게 될 것이다. 지적설계이론(ID)의 지지자들은 이번에 승리하게 될 경우 다시 정신적인 차원에서 인류의 생성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언론에서 새로운 최첨단 이론이라고 불리워온 지적 설계 이론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 이론은 단지 창조주의의 위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이론은 위장을 잘 한 셈이다. 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현재 존재하는 생명의 형태를 만드셨다고 믿는다. 지적개발이론의 주창은 어떻게 생명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어떤 입장도 취하고 있지 않으며 이 이론의 많은 추종자들은 진화론을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윈에 의해 채택된 진화론의 추진력인 자연선택의 역할을 인정하기조차 한다. 이들은 다만 오직 자연선택만이 연못의 찌꺼기가 현생 인류가 되기까지의 전과정에 걸쳐 생명을 주도해왔을 것이란 점은 배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은 왜 의심을 받는가? 바로 이부분이 지적설계이론을 주장하는 측이 창조론자들의 기본주장과 입장을 같이하는 부분이다. 즉 몇몇 생물체는 임의로 발생한 신종의 성장으로 만들어졌다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게 기능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기린의 목이 한때 현재 길이의 반정도였다가 자연선택으로 점차 길어졌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린의 눈은 어떤가? 창조론자들이 오랫동안 질문해 왔듯이 눈반쪽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다윈은 이러한 의문점이 제기될 것을 예상하여 '종의 기원' 이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눈은 처음에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후 다윈은 단순히 '빛에 민감한 신경'이 '살아있는 광학 기구'로 되기까지의 점진적 진화에 관한 시나리오를 추적했다.

지적 설계의 움직임이 단지 오래된 의심사항들을 다시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 이론은 새롭고 보다 진보된 이론으로 환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네하이 대학의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헤는 이렇게 오래된 의심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성장할수 없었던 구조들에 대해 '더이상 쪼갤 수 없는 복잡성'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안구에 대해 고심하기 보다는 인간의 혈액 응고 체계같은 아주 미세한 실체에 이 용어를 적용하였다. 자신의 책인 '다윈의 블랙박스' 에서 베헤는 12개 이상의 단백질과 관련된 이런 구조는 단 한번의 돌연변이로는 완성된 형태로 나타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단백질들이 한번에 하나씩 만들어 졌을 가능성도 없다. 왜냐하면 그 중 하나의 단백질만 없어도 혈액응고 기제는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헤의 주장은 다윈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인 브라운 대학위 케네 밀러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자신이 쓴 책인 '다윈의 하나님을 발견하기' 에서 밀러는 만일 혈액 응고를 다양한 종에서 살펴보면 어떻게 인간이 한번에 한단계씩 진보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밀러의 말이 맞다고해서 지적설계이론이 무가치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지적설계이론의 추종자들은 생산적인 의문점을 제기했던 것이고 과학에서 생산적인 오류는 옳은 사실에 버금가도록 가치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하이오주의 교육 개혁주의자들의 지적설계이론을 학교 교과서에 포함하자고 하는 주장은 이 이론이 생산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이 이론을 스스로 정당한 이론으로 입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 이론의 정치적인 과거는 그 정치적인 미래를 망칠지도 모른다.

이 이론의 성공을 위한 한가지 열쇠는 종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이점 때문에 지적설계이론이 구태의연한 창조론자부터 '생명의 힘'이 진화를 주도한다고 믿는 뉴에이지 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큰 이론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결과는 이 이론이 단지 오하이오주의 추종자들과 기자들이 일컫는 것처럼 '다윈주의의 대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윈주의는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어떤 이론도 경쟁축에 낄 수도 없을 뿐더러 그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임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정신적인 위안의 측면에서도 지적설계이론이 다윈주의를 능가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이론을 주도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진화의 과정에서 아주 먼 과거로 신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이자 베일러 대학의 교수인 윌리암 뎀브스키는 수학적인 용어를 써서 우리가 알고 있듯이 생명을 창조하기 위한 자연도태는 외부로부터의 어떤 영향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윌리엄 교수는 이같은 영향력은 상당히 추상적인 것으로서 초기 진화의 과정에 내재된 유전변형을 제한하는 경계조건에 해당하는 것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초기의 추상적인 신의 개입을 인간이 뒤좇고 있는 것이라면 다윈주의는 이 점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아무도 DNA가 어떻게 복제되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우주가 그러한 복제가 가능한 식으로 지어졌는지 모른다. 그러한 초기의 상황이 아직도 펼쳐지고 있는 원대한 목표를 위해 어떤 지적인 힘에 의해 설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결국 의식과 사랑, 인간의 양심, 윤리적으로 필연적인 선택과 같은 이제까지 나타난 정신적으로 풍성한 진화의 산물을 보라.

지적설계이론 지지자들은 신성이 진화의 과정을 시작하게 했으며 그러한 신성에 의해 설계된 원칙들이 진화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만일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기 위해 불쌍한 찰스 다윈을 공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인 것이다.

ROBERT WRIGHT (TIME) / 김내은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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