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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산업계의 「다크·호스」|ITT<국제전신·전화>회장 「해럴드·지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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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헤럴드·시드니·지닌」. 57세. 미국ITT(국제전신전화)의 회장 겸 사장. 연봉 46만8천「달러」(한학1억3천만원). 가족 처. 이것이 세계 57개국에 1백50개의 회사와 20만4천명의 가족(종업원)을 거느린 ITT의 3대 사장 「지닌」의 약력이다.
ITT는 1920년에 「덴마크·프랑스」혼혈계 후손인 「소스테니스·벤」이 3백40만「달러」의 자본금으로 설립한 회사. 전화와 전신기기가 중요산품인 이 회사는 설립자 「벤」의 탁월한 사업수완에 의해 창립10주년인 30년에는 총자산이 5억8천8백만「달러」로 늘어났으며 11개국에 지사망을 펼쳐 대회사로 발전했다. ITT는 이후 해외시장의 개발과 동류업체의 병합으로 계속 호조를 보였으나 56년 「벤」사장이 사망, 2대 사장이 들어서면서부터 퇴조를 보였다.
이러한 부진 속에서 「지닌」사장이 ITT를 맡은 것이 59년. 「지닌」은 취임사에서 『5개년계획을 실시, 향후 8년마다 ITT의 수익을 배씩 늘리겠다』고 장담했다.
「지닌」의 장담은 들어맞아 그가 회사를 맡은 59년 ITT의 연간매출액이 7억6천6백만「달러」던 것이 8년 후인 66년에는 총매출액이 3배에 가까운 21「달러」로 껑충 뛰어올랐으며 순익도 2천9백만「달러」에서 9천만「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가난한 혁단의 「매니저」의 아들로 태어나 훌륭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계리사로 출발한 그가 오늘날 미국전산업계의 「다크·호스」로 꼽히게 된 것은 오로지 그의 성실과 노력, 그리고 탁월한 사업수완의 덕이다.
「지닌」사장은 ITT로 발탁되어 오기 전 「레이디언」사의 부사장으로 있었다. 1956년 취임시 적자투성이던 이사를 이끌고 「지닌」은 3년 만에 매상고 4배를 올려 「레이디언」사를 기사회생시키는 공을 세웠다. 59년 「지닌」이 보다 자기능력을 더 살릴 수 있는 ITT로 가기 위해 「레이디언」사에 사직서를 제출하자 「뉴요크」증권시장의 「레이디언」사 주가가 6.4%나 떨어졌다.
「뉴요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ITT의 5개년계획에 관한 「메모」와 계획서가 가득 들어있는 손가방 12개가 놓여있다. 그는 이 손가방을 한시도 그의 곁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사무실』이라는 것이 「지닌」사장의 생활신조.
이러한 「지닌」사장 영도하의 ITT는 8년 사이에 말단 사원에서부터 중역진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체질 개선했다. 「지닌」사장은 「콘글로머리트」로 불리는 「단일운영하에 다종상품생산」으로 ITT의 체제를 바꾸었다.
산업의 업종별 흥망성쇠가 비교적 심한 편인 미국에서 ITT가 계속 호경기를 누리는 이유는 이「콘글로머리트」계획하의 타업종 병합정책이 성공한 때문.
ITT의 타사병합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이 미국 3대 방송의 하나인 ABC방송의 통합. 이 계획은 통합을 2차에 걸쳐 허가한 연방통신위원회와 이를 반대하는 법무성사이에 싸움이 붙는 등 여러 가지 장해가 있었으나 ITT는 통합을 강행, 오는 10월 그 첫 방송을 할 예정이다.
ITT의 장점의 또 하나는 해외사에 현지민의 직원을 많이 채용한다는 점.
ITT가 채용한 현지인 가운데 유명한 이로 전「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리」가 「노르웨이」지사의 책임자로 있으며 전 「벨기에」수상 「폴·앙리·스파크」가 「벨기에」 총책임자로 있다. 경영의 천재 「헤럴드·시드니·지닌」사장 영도하의 ITT 47년사에 가장 남을 작품은 63년8월 「워싱터」과 「모스크바」사이에 가설한 직통전화인 「호트·라인」. 이밖에 미전략공군사령부의 「컨트롤·스위치」와 미공군의 원거리조기경보장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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