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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살인|물증 없는 미궁|범인은 누구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살인범으로 검찰에 구속 송치되었던 신규한(50)씨는 29일 만인 7일 하오 검찰의 무혐의 불기소 처분으로 백일하에 풀려 나왔다. 29일 동안 살인범으로 있었던 신씨는 『고문경관에 대한 고소와 국가 상대의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억울한 심정을 털어놨다. 『죄가 인정되면 사형인 살인 피의자를 증거없이 기소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이 사건을 수사 지휘해 온 허형구 부장검사는 석방 지휘서에 서명 하면서 시원해 했으나 재수사 지시를 받은 경찰만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울상이다.
문제는 처음부터 물적증거였다. 검찰은 신씨의 석방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①유력한 증거물로 경찰 제시한 솜뭉치 두 개 중 1개는 혈흔을 검출할 수 없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고 ②신씨의 자백 내용에서 「시멘트·블록」을 왼손으로 3, 4번 쳤다고 하나 너무 무겁고 ③광문 어귀에 뒀다는 「블록」의 위치가 다르고 ④한 여인은 석류 「곤로」를 썼기 때문에 방에 들어가 연탄을 시험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 등.
경찰도 당초부터 신씨를 진범으로 보면서도 범행을 뒷받침 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고민, 신씨의 자백과 피묻은 솜뭉치를 유일한 근거로 「무리한 송치」란 비난 속에 수사를 일단락 지었었다. 신씨는 검찰에서 예상대로 경찰에서 행한 자백의 임의성을 번복,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신씨가 범행후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는 솜뭉치 두 개 중 1개에서 『혈액형을 검출할 수 없다』는 감정 결과는 이 사건을 뒷받침했던 경찰의 물증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던 것이다.
신씨는 7일 밤 『정동「호텔」에서 연일 계속된 고문으로 기력도 없어 「피를 닦은 솜을 어디에 버렸느냐?」는 경찰 심문에 「뒷장독대다」고 답했더니 「왜 뒤냐? 앞이지?」라는 추궁에 「그렇다」고 응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이 발표한 「신씨의 자백에 의한 솜뭉치의 발견」은 이날 밤 신씨의 말에 의하면 경찰이 솜뭉치를 먼저 찾아 신씨에게 뜯어 맞춘 것으로 되어버렸다. 또한 자백에 관해 신씨는 『경찰이 2, 3일씩 밥을 굶겨가며 범행 내용을 녹음했는데 원고를 미리 보여주고 취입, 수사관들의 「실감나지 않는다」는 성화에 못 이겨 3번이나 다시 지우면서 한 개의 자백이 연출되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7일 밤 신씨의 석방과 함께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 지시를 받고도 경찰은 신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찰이 부인한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을 놓아준다면 범인은 없다』고 울분을 터뜨린다
경찰은 ⓛ사건발생 시간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았고 이를 조작했다. ②한 여인의 시체해부 결과 범인은 왼손잡이로 밝혀졌는데 신씨가 왼손잡이고 ③한 여인의 피살 부분 등 피해자들의 피해 상황을 너무나 상세히 알고 있다는 점등을 내세워 『이 사건에 물증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키」 바지의 행방은 경찰은 범인이 범행 후 바꿔 입고간 것으로 보이는 유춘택씨의 「필키」 바지를 처음부터 이 사건의 유일한 물적 증거로 단정했었다.
하여튼 이 「필키」바지를 찾지 못한 경찰은 9번이나 번복된 신씨의 자백에 말려들어 이젠 신씨 스스로가 전에 맡았던 「자백-번복」극의 초라한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제 경찰은 신씨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거나 적어도 신씨가 진범이 아니라면 신씨의 증언을 얻고 신씨가 보았다는 사건 당일의 37∼8세 가량의 남자를 다시 찾아야 한다. 이런 복잡한 문제와는 달리 한 여인 집은 유산처리도 하지 못한 채 한 여인의 4촌 동생 한혜숙(44)씨 부부와 시동생이 살고 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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