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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없는 5분의 화면 … 세상을 담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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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식채널e’가 2005년 방송한 ‘박지성’편. 평범한 영웅이란 주제로 어린 시절과 세계적인 스타가 된 모습을 교차 편집해 감동을 줬다 [사진 EBS]

사는 데 쫓기다 보면 시간은 덩어리째 흘러간다. 분·초보다 하루·주 단위로 시간은 휙휙 간다. ‘5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EBS ‘지식채널e’가 2009년 방송한 ‘5분’에 따르면 이 시간 동안 30조번 명령을 뇌에서 주고 받고, 50번 눈을 깜빡이고, 9000개의 은하가 다른 은하와 충돌한다. 사형수였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었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죄와 벌』이란 작품을 쓰게 됐다. 사형수에서 러시아의 대문호로 인생이 달라진 시간이다.

 ‘지식채널e’가 30일로 방송 1000회를 맞는다. 2005년 9월 5일 첫 방송한 이후 7년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훑으며 다양한 사고와 정보를 안겼기에 ‘5분의 인문학’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홈페이지 누적 방문자 수는 지금까지 1880만 명에 달한다. 방송 내용을 정리한 단행본도 8권(누적 판매 100만부 돌파)이나 나왔다.

 인기 비결은 독특한 스토리텔링 기법에 있다. 이상범 PD는 “50분짜리 드라마 한편을 확 줄여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반전을 주는 데 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13일 방영한 ‘완전범죄’편을 예로 들면, 방송 끝 무렵까지 비슷한 시간대에 전 세계에서 일어난 노인 살해 사건을 다룬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없고, 범행동기도 밝힐 수 없다. 5분이 다 지날 무렵 이 완전범죄의 범인이 밝혀진다. 바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이다.

 이처럼 방송에는 ‘그러나’의 반전이 넘친다. 또는 ‘그리고’라는 말로 의외의 사실을 공개해 시청자의 허를 찌른다. 특정한 결론을 강요하지 않고 ‘열린 결말’을 지향한다. 이렇기에 방송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는 호평을 받는 이유다. 이 PD는 “5분의 시간과 반전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끝까지 시청하게 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방송이지만 내레이션은 없다. 오로지 자막·영상·음악만으로 진행된다. 캐나다 온타리오 TV의 ‘매터스(matters)’가 내레이션과 음악 없이 자막만으로 짧은 영상물을 제작하던 형식을 차용했다. ‘채널지식e’는 여기에다 반전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더하고, 자막과 영상을 버무려 그만의 독특한 형식을 만들어냈다. 이 PD는 “앞으로 채널e의 방송 내용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지식 데이터 뱅크로 만드는 게 목표 ”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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