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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니티는 독재자 … 레슬링 망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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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명우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은 “올림픽 퇴출위기지만 정신 차리고 레슬링이 되살아나는 계기로 삼자”고 했다. [박종근 기자]

한명우(57)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은 투혼의 상징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82㎏급 결승에서 눈썹 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붕대를 감고 경기를 치러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2020년 여름올림픽부터 적용할 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레슬링을 제외했다. 근대올림픽은 물론 고대올림픽부터 있었던 레슬링이 사형을 구형받은 셈이다.

 그러나 지난 17일 서울 방이동 대한체육회에서 만난 한 부회장의 반응은 막연한 분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라며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그동안 오만하고 방탕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진정한 레슬링 발전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레슬링계 독재자 마티니티=한 부회장은 FILA의 전 회장인 라파엘 마티니티(스위스)가 레슬링을 망쳐놨다고 주장했다. 한 부회장은 “마티니티는 독재자나 다름없다. 그는 2002년부터 지난 3월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그사이 자신의 고향인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만들고 부인을 사무국장에 앉혔다. 친인척도 대거 직원으로 채용했다. 국제 대회에서는 심판 판정에 관여해 자주 구설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티니티가 IOC 위원들 눈 밖에 난 것도 올림픽 퇴출의 한 원인”이라며 “마티니티는 레슬링 퇴출이 결정되기 직전까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심판 출신인 마티니티는 경기 규칙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재임 기간 매해 경기 규칙을 바꿨다. 그런데 부작용이 더 컸다. 규칙 개정이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렸다. 한 부회장은 “마티니티가 규칙을 자주 바꾼 건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레슬링 발전이 아니라 자신의 발전에만 신경 썼다”고 지적했다.

 마티니티는 지난달 태국에서 열린 FILA 총회에서 불신임 투표를 거쳐 회장직에서 강제로 물러났다. FILA는 다음달 1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새 회장을 뽑는다. 마티니티는 또 출마한다고 한다. 한 부회장은 “내가 국내 대표로 선거에 참가한다. 많은 회원국이 새 인물을 내세우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마티니티

 ◆“레슬링 올림픽 퇴출 절대 없을 것”=한 부회장이 레슬링을 시작한 건 올림픽 때문이다. 1974년 고교 2학년 때 태권도 선수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올림픽이라는 꿈 때문에 레슬링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는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퇴출된다면 저변이 약한 국내와 아시아 레슬링은 침체기를 맞을 것이다. 벌써 레슬링을 포기하는 어린 선수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선수들로부터 “우린 이제 어떡하느냐”는 원망과 걱정 섞인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1시간 이상 진지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한 부회장은 “필리핀 선수들을 보면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올림픽에 대한 희망으로 눈빛이 살아 있다. IOC 집행위원들도 레슬링계의 반발에 당황하고 있다.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퇴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레슬링에 기회 줄 수도”=IOC는 다음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시 한 번 집행위원회를 연다. 레슬링은 이 자리에서 야구·소프트볼, 가라테, 우슈, 롤러스포츠, 스쿼시, 스포츠클라이밍, 웨이크보드 등 7개 후보 종목과 올림픽 정식 종목 진입을 다툰다. 지난 2월 집행위원회 직후만 해도 ‘레슬링이 다시 기회를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었다. 박인규 대한체육회 국제교류과 팀장은 “당초 집행위원회에서 1개 종목을 추천하면 9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인준을 받아 새 종목이 올림픽에 포함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ANOC) 등에서도 레슬링 퇴출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집행위원회도 쉽게 결정하기 어렵게 됐다. 레슬링을 포함한 복수의 종목을 추천한 뒤 최종 결정을 총회에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레슬링 퇴출을 막기 위해 학창 시절 레슬링 선수였던 월가의 임원들이 로비 자금을 모금하는 등 각계의 성원도 이어지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도 “레슬링 퇴출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레슬링 선수는 올림픽 메달 반환 운동을 하고 있다.

글=김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한명우는 …

●생년월일 : 1956년11월 21일
●출신학교 : 리라공고(현 리라아트고)-건국대
●수상경력 :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자유형 74㎏급 금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 자유형 82㎏급 금메달
● 주요 경력 : 국가대표 코치(1988~1990, 1992~1994)
KBS 해설위원(2004~)
대한레슬링협회 훈련이사(1997~2001)
전무이사(2002~2008)
홍보위원장(2008∼2012)·부회장(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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