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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전후 22년을 맞는다. 2차대전은 몸소 그것을 체험한 세대들도 아픔이 가신 상흔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겐 그보다 더 비통한 전쟁이 있었고, 국토분단의 비극이 아직도 계속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누구도 깃발을 들고 기뻐하지 않았다. 평화가 온 것은 아니다』 「사르트르」의 말은 전후의 의미를 똑똑히 부각한다. 마치 우리를 보고하는 말과 같다.
2차대전에서의 총 손실은 확산된 전장, 「나찌스」 집단수용소에서의 대량학살, 폭격으로 인한 사상, 기아와 질병 등으로 1차대전의 경우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입은 인명손실의 총계는 2천2백만명을 헤아리고 그 반수이상이 민간인이다. 그것은 최소한 1차대전의 배수에 달한다.
전후의 정세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했다. 원·수폭탄, 유도탄, 세균전, 그밖에 가공할 무기들이 새로운 전면전의 공포를 만들고 있다. 전 인류를 멸종시킬지도 모른다는 혹은 문명의 기반을 폭싹 파괴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저마다 앞질러 뒤쫓고 있다. 이런 무력 앞에서 지식인은 소외당하고 그들의 절규는 죽은 양심에 불과하다. 전후에도 여전히 정치가 우선하며 모든 가치를 규정한다. 대국과 소국의 한계도 분명히 금 그어져다. 핵의 공포는 대국에 보다 많은 발언권을 주고 그것은 마치 지배권처럼 행사된다.
전후의 교훈은 무엇인가. 인류는 결국 일종의 석기시대와 같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인간조건의 파멸인가.
종전22년을 맞으며 대국들은 힘의 한계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동·「베트남」·「쿠바」·「나이지리아」·「키프로스」 등은 대국의 정치적 무력을 노출시켰다. 현대의 세계는 한나라의 손에 정복될 수도 없으며, 개종을 강요하는 지배도 불가능하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며 다수의 나라가 모여 있다.
대전의 경험은 인간조건을 추구하는 것이지 그것의 포기도 파멸도 아니다. 전후 22년은 실로 허송세월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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