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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난감 없는 섬 어린이|서산 지치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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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람이 그립다. 지치도에는 단 3가구 18명이 산다. 최씨가 두 집, 김씨가 한 집, 배 1척과 1정보 남짓한 밭에 매달려 있다. 사람이 3백50명쯤 사는 섬까지 가는데 뱃길로 2시간. 어린이들에겐 낯선 해변의 길손이 아쉽다. 밤낮 보는 얼굴들- 이게 모두 세계의 인구인줄 알고 산다.
1년에 한번쯤 낯선 사람을 볼 때도 있다. 군 공보실에서 「뉴스」를 가지고 온다. 꼭 1년에 한 번이다. 올해는 「월남전선」이란 영화를 보여줬다. 보건소도 1년에 한번 온다. 동네 우물에 「클로르칼크」를 뿌려주고 『방역 대책을 끝냈다』면서 돌아갔다. 경찰관은 한 달에 한 번쯤 온다. 도둑이 없으니 자주 올 필요도 없다. 또 있다. 1년에 한번, 상혼이 철저한 「아이스케이크」 장수가 얼음과자를 갖고 와서 빈 병과 모조로 바꿔간다. 뱃길이 사나울 땐 시간이 걸려 섬까지 왔을 땐 「아이스케이크」가 다 녹아 버릴 때도 있다. 젓가락만 둥둥 뜬 것을 보고 「아이스케이크」장수는 울고 간다.
섬 어린이 친구는 갯가에 매 논 빈배다. 장난감은 아침에 먹고 남은 꽃게의 딱지. 빈배에 올라가 게딱지를 놓고 소꿉장난을 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란다.
섬 어린이들은 외로와도 울지 않는다. 「검」대신 「짐지리」라는 찝질한 바다풀을 씹는다. 자꾸 씹으면 나중엔 엷은 단맛이 난다. 갓난아기도 「짐지리」를 씹다가 졸음이 오면 자고 깨어나면 또 씹는다. 어른들은 어린이들 때문에 일을 못한다는 법이 없다.
놔두면 저절로 자라는 것- 그것이 어린애다- 부모들은 이렇게 믿는다.
그리운 것이 많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리운 것이 없다. 가지고 싶은 것이란 고무신과 쌀밥. 소망은 소박하다. 파도에 맡기고 아침부터 집을 비워도 어린이들을 위한 불안은 없다. 파도가 어린이를 유괴할 리 없고 보면 섬사람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사람을 훔쳐다 뭣에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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