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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퀼트전서 김해자씨 극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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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땀 한땀 촘촘하게 명주천을 누비는 노모(老母)의 손길에는 아들의 장원급제를 비는 정성이, 수더분한 며느리의 손길에는 연로한 시어머니의 무병장수를 비는 정성이 배어 있다.

두겹 옷감 사이에 솜을 채워넣고 좁게는 3㎜ 간격으로 홈질을 반복하는 누비. 몇십년간 끊겼던 전통 누비의 명맥을 되살려내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이 된 김해자(金海子.51.사진)씨는 누비 '기능인'을 넘어서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김씨의 명성은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높다. 경주 공방과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있는 전시관은 일본의 기모노 전문가들이 찾아와 한수 배우고 가는 필수 견학코스가 된 지 오래다. 지난주에는 25일부터 시작한 도쿄 국제 퀼트전에 초대받아 6개월간 준비한 누비 작품 26점을 전시하고 돌아왔다.

김씨는 "도쿄돔 야구장을 통째로 개조해 사용한 퀼트전에서 누비를 전시하는 한국관은 가장 인기있는 코너였다. 장내 방송으로 몇번씩 소개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NHK TV와 위성방송이 두차례 김씨를 인터뷰해 방송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김씨의 누비에 대해 "이렇게 공들인 바느질이 있었다니…"라며 경악했다고 한다.

3㎜ 간격은 보통 사람의 손끝 감각으로는 바느질하기 어려울 정도다. 옷감에 선을 긋지 않고 가닥 하나를 거의 빼냈다가 다시 집어넣어 흔적을 남기는 '올 튀기는' 작업에만 며칠씩 걸린다.

특히 김씨의 누비는 천연 염료를 사용해 직접 염색, 한국의 전통색을 살린 것이 자랑이다.

특별히 공을 들여 2.7㎜ 간격으로 누빈 남자 두루마기는 만드는 데 두달이 걸리고 가격은 8백만원쯤 한다. 누비는 간격을 좁힐수록 옷이 더 가벼워지고 따뜻해지기 때문에 공임이 올라간다. 공들인 누비일수록 뻣뻣하지 않고 몸에 착 달라붙는다.

김씨는 "누비는 기교보다는 끈질긴 집념의 소산이다.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또 천을 염색해 누비고 옷 만드는 과정에서 옷 입을 대상에 대한 정성없이는 작업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아무에게나 옷을 팔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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