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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건 싫어요, 내 딸은 발레 안 하길 바랐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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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방식이 독특하고 재밌어요. 늘 하던 뻔한 게 아니네요. 어떻게 하면 저를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어젯밤 큰 동서와 대화를 많이 했어요. 내 이야기만이 아니라 아이들 얘기도 해야 하니까요. 동서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냐’ 물으니 머리만 닿으면 자는 사람이란 답이 바로 나오더군요. 맞아요. 눈 뜨면 쉼 없이 움직여서인지 머리에 뭐가 닿기만 하면 바로 잠들어요. 재능이 별로 없어 많이 노력해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
문훈숙(50) 유니버설발레단장은 소녀 같았다. 본인은 물론 가족 사생활까지 다 드러내는 江南通新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소녀 같은 호기심을 내비쳤다.

 문 단장은 세간에 알려진 대로 고(故)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의 둘째 며느리다. 문 총재 부부의 최측근인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의 딸이기도 하다. 스물 한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문 총재 둘째 아들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남편의 형 부부에게서 딸을, 바로 아래 남동생에게서 아들을 각각 입양했다.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는 문신철(21)씨와 신월(9)양이다.

 신철씨와 마찬가지로 신월양 역시 서류상으론 문 단장의 딸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큰 동서의 딸이다. 그래서 두 엄마가 아이의 교육이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웃에 사는 두 엄마가 같이 자식을 키운다니 보통 사람 머리론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의 우려 섞인 시각과 달리 문 단장은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있다. 자녀 교육 철학이 확고한 덕분이다.

 그는 “아들과 딸을 키우는 방법은 분명 차이가 있다”며 “아들은 강요하지 않아야 오히려 잘 통하고 딸은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스무 살 넘은 아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 먼저 전화를 걸어와 길게 통화할 만큼 둘 사이는 다정다감하다. 강압적이지 않은 양육 방법이 역시 ‘먹힌’ 모양이다.

 문 단장은 “나도 처음부터 이런 걸 알았던 건 아니다”며 “다른 엄마들처럼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한때는 열성 엄마 모드로 공부 스트레스를 주며 엄하게 굴었다는 것이다. “엄마로서 욕심이 생기니 잔소리가 늘고 그럴수록 아들은 힘들어 했죠. 여느 엄마처럼 극성스럽게 해봤는데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드니 소용없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요. ”

 그리고 스스로 달라졌다. 엄마니까, 어른이니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해”라거나 “이거 했니”라고 묻는 대신 “엄마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떠니”라거나 “네가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바꿔 말했다. 그러자 아이도 달라졌다. 그리고 엄마의 바람대로 따라와줬다. 문 단장은 “믿어주는 만큼 자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더라”고 했다.

 아직 공개 입양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하물며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게 문 단장의 가족사는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너는 엄마가 둘이냐”는 식의 무신경한 주변의 호기심은 신철씨를 힘들게 했다. 당시 신철씨의 친부모인 시동생 부부는 미국에 있었다. 그래서 방학마다 친형제와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고,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유학을 보냈다.

 문 단장은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입양 사실을 알려줬다”며 “우리처럼 가족 내에서 입양한 경우라면 공개하고 키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딸은 조금 더 수월했다. 설명하면 엄마 마음을 먼저 읽고 따라와 줬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엄마와 같은 발레리나를 꿈꾼다. 엄마는 이 힘든 길을 딸이 걷는 게 가슴 아프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기 때문에 음악을 권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발레를 시킬 생각은 없었어요. 발레를 그만두고 난 후에야 매일 10시간 넘도록 몸을 혹사해 왔다는 걸 알았죠. 발레는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하루만 쉬어도 티가 나요. 발레를 그만두고 나니 세상에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남들은 다 이렇게 편하게 살았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던데요.”

 하지만 당시 7살이던 딸은 눈물까지 흘리며 “난 꿈이 있다”며 당차게 엄마의 반대를 꺾었다.

 사실 문 단장 역시 출발부터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미국에서 태어난 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버지는 한국말 서툰 딸을 홀로 남겨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1학년, 영국 로열 발레학교에 입학했지만 동양인이란 이유로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팔다리 긴 서양인이 양 팔을 벌릴 때 그는 등과 어깨까지 늘려야 했다.

 동양인 발레리나는 남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이 모든 부족함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극복하기 어려웠던 게 바로 표현력이었다.

 문 단장은 “상대 남자 무용수 눈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너무 수줍어서 그 4초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변화시킨 건 18세에 만난 루마니아 출신의 제타 콘스탄틴이다. 그는 문 단장에게 한 가지 특별한 제안을 했다. 사람마다 눈동자 색깔이 다르다며 “상대 무용수의 눈동자 색깔을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이 방법은 수줍은 많은 동양인 발레리나를 단번에 달라지게 했다.

 “수줍은 사람에게 그러지 마, 자신감을 가져, 이런 말들을 자주 하죠, 거꾸로 말하면 ‘너는 자신감이 없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거예요.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는 더 위축됩니다. 포커스(주의)를 나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주세요. 아이가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동화할 수 있도록 시각을 넓혀주는 거죠. 이런 경험 덕분인지 아이의 숨은 재능이나 감춰진 감정을 발굴하는 부모나 스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훈숙 단장에게 발레리나 출신 발레단장으로서, 또 발레리나를 꿈꾸는 딸을 둔 엄마로서 발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말이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인가 보다.

 “사실 나는 늘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0년 전만 해도 인터뷰 할 때 거의 단답형으로 했다.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말을 못했다. 하지만 발레단 단장으로서 언론 인터뷰는 물론 여러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자꾸 하니 느는 것 같다.”

-딸의 표현력이 좋다고 들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

 “가끔은 놀랄 정도로 표현력이 좋다. 아이가 어릴 때 음악 CD와 책이 함께 있는 동화책을 사서 아침에는 음악을 틀어주고 저녁에는 책을 읽어줬다. 그 책과 관련한 우리만의 추억이 참 많다.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이때 느낀 감정이 도움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문 단장이 발레를 시작한 것도 딸이 발레를 시작했던 때와 꼭 같은 7살이었다. 다만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가 아니라 그저 교회에서 언니와 함께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 발레가 문 단장의 인생 그 자체가 돼버렸다. 39세가 돼서야 무대에서 내려왔고 지금도 발레단을 이끌고 있으니 말이다.

 프리마 발레리나에서 발레단을 이끄는 경영인이 된 지금 달라진 게 한둘이 아니다. 그중 하나가 듣는 음악이다. 평생 들어온 클래식이 아닌 명상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한다. 문 단장은 “클래식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춤을 추게 되더라”며 “명상음악으로 심신을 차분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평생 발레로 단련된 그의 몸이 아직 무대를 잊지 못한 모양이다.

딸 신월이와 발레축제 이후

[발레 꿈나무들에게 주는 조언] “관객에게 몸으로 말을 걸어야”

-제2의 문훈숙을 꿈꾸는 발레리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계적으로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동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테크닉만 익혔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 심지어 프로페셔널 무용수도 자신은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발레는 몸으로 표현을 하는 예술이다. 동작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생각하며 춤을 추라고 권하고 싶다. 동작 하나하나를 몸으로 하는 대사라고 생각해야 한다. 관객에게 몸으로 말을 걸 수 있어야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갖는다. 기교보다 중요한 것은 동작 속에 숨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를 발레리나나 발레리노로 키우고자 하는 엄마들에게 필요한 건 뭔가.

 “한국 엄마는 눈앞의 결과에 너무 급급하다. 당장 배우고 익혀서 콩쿠르 입상까지 해야 비로소 ‘내 아이가 발레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발레는 콩쿠르 입상이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시작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발레인 중에서는 콩쿠르 한 번 나가지 않고 최고에 오른 사람도 많다. 지금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는 도구가 되어야지 그것이 전부가 되고 목표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 급하게 콩쿠르를 위한 기교부터 익히다가는 가장 중요한 기본을 놓치게 된다. 혜성처럼 등장하는 주인공은 늘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들이다.”

글=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문훈숙

-1963년 50세

-미국 워싱턴 DC 출생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유니버설문화재단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ISPA총회 자문위원

-한국발레협회 이사

-1978년 선화예술학교

-1979년 영국 로열발레학교

-1980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멤버(수석무용수)

-1995년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취임

-모스크바국립문화예술대학교 무용예술학 명예박사

-미국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유니버설발레단 단장·한국발레협회 이사

[삶]

사는 곳: 한남동 UN빌리지

근무하는 곳: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운동하는 곳: 거실(매일 일어나자마자 빈속에 1시간~1시간 30분 요가와 불교식 108배를 한다. 모든 몸 근육을 사용할 수 있어 강력히 추천한다)

장 보는 곳: 도우미 아주머니가 대신 본다.

자주 가는 식당: 대부분 도시락으로 해결. 약속 있을 땐 상대가 정하는 곳을 따른다. 밀가루와 쌀은 거의 먹지 않는다. 대신 야채와 고기 위주로 배가 부를 만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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