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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상의 정국, 교차점은 없는가?|박 대통령의 담화 발표와 여·야의 전기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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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8 총선이 끝난 지 열흘, 그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총선 파동에 관한 그의 공식견해를 처음으로 밝힌 것은 하나의 큰 계기를 마련했다. 강파른 정국은 이대로 계속될 수 없는 것. 공화·신민 두 당은 각기 어떤 감각에서 사태를 다루고 있으며 그 평행선은 어디서 교차될지를 여당의 사정에 비추어 들여다본다. <정치부>
○…공화당은 지난 12일 권오석씨를 제명한 이래 16일까지 모두 8명의 당선자를 제명했다.
6·8 총선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데모」학생이 거리로 밀려나올 때 정부와 공화당은 사태수습을 법적 처리와 행정적 수단의 병행으로 추진했다. 부정선거구에 대한 자체 조사마저도 3개 지구에 국한한다고 강변하던 공화당이 8명의 국회의원 당선자 제명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정부와 공화당 측에서는 야당·학생측이 쓰고 있는 「부정선거」라는 말을 우선 납득하지 않는다. 『부정선거라면 자유당 때처럼 중앙에서 계획, 지령한 조직적인 부정을 의미하지만 이번은 부분적으로 부패·타락한 선거』라는 것이며 부패, 타락한 선거를 치렀다는 점에서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야당 측도 함께 비판받고 또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결과책임」의 세계- 부분적인 선거부정이나 과열경쟁으로 인한 선거의 타락은 행정이나 법 이전의 민주주의의 기본문제이며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가 가져야할 일이다. 8명의 당선자를 제명한 공화당은 이 징계조치가 바로 당으로서의 정치적 책임이라고 한다. 8명 모두가 부정선거를 저지른 것이 아니지만 잡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조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일단 제명, 법의 공정한 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정부·여당 내부에서는 총선 파동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이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었던 것 같다. 행정부 측의 과당지원이 말썽의 한 원인이기 때문에 사태수습을 위해 행정부 쪽에서 누군가가 인책해야한다는 얘기다. 어느 장관은 이미 사의를 표명한바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다수 의견은 「선 수습·후 사퇴」를 주장했고 그래서 이것이 정부·여당의 방침으로 굳어져있다. 그것도 「선거부정」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를 남기는 인책이 아닌 새 조각을 위한 사퇴라는 것이다.
○…야당은 총선의 전면무효화와 전면 재선거를 주장하고있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또 야당 측 일각에서는 전체 야당의원이 끝내 의원등록을 거부하는 한 국회의 개원 및 구성이 불가능하리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정부·여당에서는 개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고 있다. 공화·신민 양당은 선거가 끝난 지 10일이 넘도록 「테이블」을 마주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공화당은 야당 쪽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개별적인 막후접촉을 모색하고 있으며 K씨·L씨 등 당외의 재야 정객을 중간에 내세워 통화의 줄을 이어보려 노력하고있으나 그 성과는 아직은 회의적이다.
첫째 「선거부정」의 처리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누차 그 엄단을 지시했고 공화당도 상당 규모의 숙청을 단행했으나 매듭이 지어진 것은 아니다.
잡음을 일으켰다는 사실만으로 제명된 사람이 모두 정치적 책임으로 당선을 포기하거나 의원직을 사퇴한다면 별문제지만 그 가운데서 결백을 주장하고 또 검찰이 부정의 증거를 잡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재선거 범위가 좁혀질지도 모르지만 재선거의 범위를 정국의 해빙과의 함수관계에서 내다보는 관측이 많다.
둘째 정치적 인책 문제는 재선거 범위보다도 더 어렵고 「델리케이트」한 것 같다.
재선거 범위나 정치적 인책의 문제는 공화당 내부의 정치 기상과 정부·여당의 정치감각, 정치력에 따라 재단될 일이지만 우선 조각이 오는 7월1일을 전후해서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그 전에 여·야 대화의 길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월말에 가서 어떤 전기를 잡을 것도 같다.
신민당은 6·8 총선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재선거 관철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전면적인 재선거가 사실상 관철될 수 없을 때 투쟁목표를 실현성 있는 방향으로 한발 짝 후퇴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론과 자폭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면 재선거 요구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극단론의 대립이 시련거리로 다가서고 있다.
『재선거를 요구하고 이것이 관철될 때까지 당선자는 의원등록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당선자 의회, 운영의회, 지구당 위원장대회에서 차례차례 확인되었으며 이 방침을 추진하기 위해 「6·8 총선 무효화 투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박 대통령이 16일 투·개표에서 현저한 부정이 드러난 보성 등 8개 지구의 공화당 당선자를 제명하는 담화를 발표하자 유진오 당수는 『선거부정은 전국적인 것이며 이를 인정한다면 신민당도 사태수습에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응수했다. 투위는 또 전면적 부정을 밝히기 위해 독자적인 조사단까지 구성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강경 방침을 최후까지 관철할 수 있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으며 이 방침에서 후퇴할 수 없다는 강경론에 당론이 일치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선자 회의에서 윤제술 김재광씨 등은 한·일 협정 비준 파동 당시의 강·온 파쟁의 경험을 내세워 현실적이고 탄력성 있는 투쟁을 내세웠다.
강경 방침은 총선 직후 지역구 후보들의 흥분을 배경을 굳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전면재선거」가 관철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문제로 부닥쳐오고 있다.
당 간부들은 불가능한 전면재선거 요구보다는 구체적인 부정이 밝혀진 일부 지구의 재선거로 투쟁방침을 옮기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투위의 한 간부는 16일 『투표와 개표에서 부정이 현저하게 감행된 30개선의 지구』에 대해 뚜렷한 부정의 증거를 제시, 정부·여당에 재선거를 요구하고 정부가 이것마저 거부할 때 당선자는 의원직을 실질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투쟁방안으로 바꾸어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직 이 같은 안이 공식 기구에서 제안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으로 활발히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전면 재선거 요구에서 후퇴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구축하는 극단파가 이 움직임과 맞서고 있다.
당선자 중의 상당수와 원외 청년당원들은 투위의 전략후퇴를 경계, 별도의 투쟁 「서클」운동을 펴고있고 극소수지만 일부에서는 야당 없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당을 해체해야한다는 당선자 불신을 곁들인 자폭론도 있다.
또 보성·고창 등 지구에서는 그 지역만이라도 재선거를 관철키 위한 투쟁을 독자적으로 펴고 있으며 중앙당 지시를 받기 위해 상경했던 낙선자들도 보성 지구의 뒤를 따르기 위해 서둘러 지구당으로 내려갔다. 사실상 어느 면에서는 이미 전면 재선거 관철과 일부 지구 재선거 투쟁이 병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투위 집행위는 아직은 전면 재선거 이외의 투쟁방안을 공식적으로는 전연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면 재선거가 완전히 벽에 부딪칠 때 일부 재선거로 투쟁목표를 후퇴시키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경우 강·온 양론 또한 맞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수 유진오씨의 영도권은 민중계 대표라는 영역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윤보선씨는 신한계의 대표로 강경 세력의 지휘탑에 나설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여당의 대야 접촉설은 강경파의 당선자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자칫하면 또 한 번 야당은 투쟁방안을 에워싼 분열을 되풀이할 위험성 마저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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