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고베 대지진' 교훈 살린 일본의 저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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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13일 오전 5시33분 마스터스 골프대회 생중계를 하고 있던 TBS-TV 화면 위에 ‘삐삑~’ 하는 소리와 함께 속보 자막이 떴다.

 ‘간사이(關西) 지역에서 매우 강한 지진이 있었습니다. 진원지인 효고(兵庫)현 아와지(淡路)섬의 진도 6약(弱)…’

 순간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 건 18년 전 1995년 1월 17일의 대지진.

 흔히 ‘고베(神戶) 대지진’이라 불리는 당시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의 진원지도 이번과 똑같은 아와지 섬이었다. 공교롭게도 지진 발생 시간도 비슷한 오전 5시46분. 사망자 수 6434명, 부상자 4만3792명, 피해 규모 10조 엔이란 당시 대사고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18년 전은 진도가 7이었고 이번에는 6약. 지진 규모도 당시의 M7.3에 비해 다소 약한 M6.3이긴 했다. 그러나 옆으로 흔들리는 일반 지진과 달리 이날 발생한 직하형 지진은 단층이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상하진동이 심한 데다 진원이 얕아서 설령 지진 규모가 작아도 큰 피해를 초래하기 쉽다.

 하지만 “괜찮을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고베대지진 10년째인 2005년 1월 ‘고베, 10년 후’를 현장취재하면서 본 모습들 때문이다. 지진 당시 힘없이 무너져 내렸던 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한신고속도로는 철근 강도를 3배로 늘리고 교각의 기둥도 폭을 2배로 키웠다. 건물 90%가 파괴되거나 불타버린 고베시 나가타(長田)구의 목조건물 밀집촌은 단단한 최신식 주택으로 바뀌었다. 시내 곳곳의 지하에 개당 100t짜리 방화 수조 200개가 배치됐다.

 10년 동안 6개 분야 54개 테마로 나눠 고베 대지진 검증작업을 하고 그걸 토대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459개 항목으로 정리해 정책에 반영한 성과는 이번 지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효고현은 지진 발생 불과 7분 후인 오전 5시40분 ‘최악의 경우 사망자 10명, 부상자 76명, 가옥 1948곳 파괴, 피난자 1만6778명’이란 예측치를 발표했다. 18년 전 대지진 이후 “피해 규모를 추정할 아무런 시스템이 없었다’는 반성 아래 효고현이 독자 개발한 ‘피닉스 방재 시스템’ 덕분이었다. 지진 발생 한 시간도 안 돼 직원 90%가 출근했다. 이어 고베시 곳곳에 비축한 비상식 3000식, 담요 3000장 등 긴급물자가 트럭에 실려 진원지인 아와지섬과 피해 예상 지역 곳곳에 도착한 게 오전 11시40분. 지진 발생 불과 6시간 뒤였다. 18년 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만 하루가 지나서도 구체적 재해 대응을 못한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런저런 이유에서일까. 13일 지진의 피해는 ‘고작’ 부상자 24명. 18년 전의 교훈은 살아있었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