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랍」의 판정패|중동휴전·나세르 사임선언 뒤에 오는 것|4일만에 끝장 본 중동의 불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천7백만 마일의 전 전선에서 불을 뿜던 중동전쟁이 개전 4일 만인 8일 어처구니없게도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총을 든 지 더도 말고 24시간이면 아예 숙적 「이스라엘」을 지구상의 지도상에서 없애버릴 수 있다는 「나세르」의 호언장담은 간 데 없이 「아랍」권의 맹주 「아랍」공화국은 보다 큰 치욕을 모면코자 「유엔」 안보리의 휴전결의안에 드디어 동의하고 나선 것이다.(「이스라엘」과 「요르단」은 이에 앞서 「유엔」 결의안에 동의했음)
「시리아」 「요르단」 등 10개 「아랍」국가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타도를 외치던 「아랍」공이 최후의 일전을 포기, 깨끗이 「유엔」 휴전결의안에 복종하게 된 이유는 어디 있는가? 7일만 해도 소련 대표와 비밀회담을 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절대로 휴전결의안을 수락할 수 없다고 버티어 오던 「나세르」 대통령이고 보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결정적 요인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첫째로 「아카바」만의 봉쇄를 뚫고 파죽지세로 「시나이」사막 서부 연안의 「수에즈」운하 지구를 손에 넣은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는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아랍」공이 깨달았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아랍」세계의 패배를 더 지켜볼 수 없게 된 소련 수상 「코시긴」이 백악관과 「크렘린」간의 비상전화통을 처음으로 붙잡고 「존슨」 미국 대통령과 단독비밀회담을 가졌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집트」에 군대를 급파할 수 없는 소련으로서는 「나세르」에게 현재로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휴전결의안을 수락하는 길이라는 것을 귀띔해 주었으리라고 쉽게 추단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의 유능한 군사·외교관측통들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방향에서 중동전화가 우선 가라앉기는 했으나 앞으로 남은 문제는 복잡 미묘하다.
휴전에 이어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간에는 「유엔」의 중재나 미·소의 막후활동을 통한 협상이 열릴 것으로 보여지는데 제일 골치 아픈 문제는 지난 4일간의 전쟁에서 점령한 일부 영토에 대한 영유권과 「아랍」 세계가 재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어느 선에서 「아랍」 세계가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될 것 같다.
「아랍」 세계는 전쟁에 져도 생존할 수 있으나 전쟁에 지면 「이스라엘」은 없다는 공포감 속에서 일생을 살아가다시피 하는 「이스라엘」인들로서는 국경선에 가까이 있는 「예루살렘」의 「요르단」 지구를 쉽게 내놓으려하지 않을 것이며(이스라엘이 점령) 「이스라엘」해운의 사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카바」만이 다시는 봉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카바」만에 위치한 「아랍」공의 요충지인 「샤름엘세이크」를 자기소유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하나 「예루살렘」의 「요르단」 지구를 「요르단」이 고분고분 내놓으려 들지 않을 것이며 「아카바」만에 대한 영토를 「아랍」공이 포기하지 않으려 고집할 것이라는데 협상의 어려움이 있다.
「유엔」과 미국에 큰 기대를 걸 수 없음을 간파, 우세한 지상군으로 「이집트」를 압도하기 위해 선공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들어맞아 전쟁이 「이스라엘」의 대승리로 끝나고 있지마는 이 전쟁은 두 진영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나세르」의 동의 없는 「요르단」의 성급한 굴복으로 오는 「아랍」권의 분열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쿠데타」설이 떠돌 만큼 지위가 약화된 「나세르」가 「이집트」 내에서 확고한 지도권을 계속 잡을 수 있느냐에 적잖은 의문이 예상보다는 빠른 9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하나 회의에서 그의 사임을 수락하지 않겠다고 결의함으로써 그의 사임은 번의 되었지만 그 귀추가 주목된다. 「에시콜」 「이스라엘」 수상이 {월남전을 멋지게 해치우기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의 「다얀」 장군을 좀 빌어 쓰자고 한 미국의원이 말할 정도}로 속 시원히 「이집트」를 해치운 전쟁영웅 「다얀」 장군의 위엄 앞에 배겨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도 생각이 미칠 수 있다. <신상갑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