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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장에 놀란 럭셔리 패션 브랜드, 친절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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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를 위한 고급화 전략을 쓰던 해외 유명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약속이나 한 듯 방향을 틀었다.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기, 그리고 더 친절해지기로 말이다. 밀라노와 파리·뉴욕의 패션 피플에게나 제한적으로 공개했던 패션쇼를 이제는 유튜브나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 실시간으로 생중계한다. 액세서리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쿠폰을 e메일로 고객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주문을 받아 고객이 원하는 소재의 가방을 수제(手製)로 만들어주는 브랜드도 있다. 한마디로 콧대를 낮추고 고객 눈높이에 맞춰 한없이 친절해졌다는 얘기다. 다 온라인 세상의 도래 덕분이다.

올 2월 2013 F/W(가을/겨울) 패션위크 중 하나인 버버리 프로섬 패션쇼가 런던 켄싱컨 가든에서 열렸다. 버버리는 실시간으로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중계해 초대받지 않은 사람도 어디서나 이 쇼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또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의 버버리 플래그십 매장 등 전 세계 주 매장에 설치된 거대한 화면을 통해 고객들이 실시간으로 패션쇼를 즐기기도 했다. [사진 버버리]

전업주부 A씨. 최근 집 근처에 있는 청담동의 한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갔다. 런던에서 어젯밤 열린 이 브랜드의 이번 F/W 컬렉션(가을·겨울 의상 패션쇼)을 보기 위해서다. 아니, 잠깐. 패션쇼는 런던에서 열렸는데 왜 청담동 매장을 찾았을까. 이유가 있다. 이 패션쇼가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 매장으로 중계됐기 때문이다. 런웨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한 손에는 메모지를 들고 눈으로는 스크린 속 모델을 응시했다. 세 번째로 나온 모델이 입은 재킷이 맘에 든다. 쇼가 끝나자마자 매장 직원에게 그 옷을 주문하고 집에 돌아왔다. 물론 사이즈는 내 몸에 맞는 걸로. 두 달 후면 이 재킷은 내 손에 들어온다. 매장에 깔리기도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영국 브랜드 버버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실제 판매 과정이다. 버버리는 2009년 가을부터 런던 패션쇼를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당시 2010년 S/S(봄·여름) 컬렉션과 플로섬(버버리 최상위 라인. 버버리 모든 브랜드의 디자인 컨셉트를 보여주는 DNA역할을 한다) 패션쇼를 자사 웹사이트(live.burberry.com)를 통해 중계했다. 지금은 루이뷔통과 구찌·페라가모 등 많은 브랜드가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업계 최초라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각 도시 주요 매장에 디지털 시어터라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후 VIP고객을 초청해 런던 쇼를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자사 홈페이지뿐 아니라 유튜브·페이스북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도 생중계했다.

 

(위) 아이패드 앱을 이용한 로에베의 맞춤 가방 시스템. 원하는 가죽과 컬러, 장식을 온라인으로 선택해 나만의 맞춤 가방을 주문할 수 있다. (아래) 구찌 웹사이트. 온라인 공간에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상품 외에 다양한 콘텐트를 담았다.

 한국에선 시차 때문에 다음 날 매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쇼를 진행했다. 하지만 성격 급한 고객을 위해 ‘한국 시간으로 19일 오전 1시 웹사이트를 통해 쇼를 관람할 수 있다’는 안내 e메일을 미리 발송했다.

 혹자는 남의 사생활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는 빅 브러더 세상에 살면서 고작 패션쇼 생중계를 두고 웬 호들갑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패션쇼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금세 공감한다. 소위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쇼는 그 브랜드가 초청한 유명인과 바이어, 영향력 있는 패션업계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초대받지 않은 채 무작정 현장에 가서 아무리 그럴싸한 명함을 내밀어봐야 초청자 명단에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루이뷔통이나 샤넬·구찌 등 유명 브랜드 쇼에 초대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정도”라며 “패션업계에서의 지위와 영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런웨이 바로 앞줄 자리를 배정받는다는 건 그야말로 업계 핵심 위치라는 걸 드러내준다.

 이렇게 특정인을 위한 고급 문화였던 패션쇼가 온라인을 통해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공개될 수 있는 건 역시 온라인 시장이 커진 덕분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백화점 명품 매장 등 오프라인 시장 힘이 점점 빠지고 있는 사이 온라인 스토어를 통한 매출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브랜드 생존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온라인 시장을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럭셔리 브랜드 중 온라인 시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은 구찌다. 2002년 미국에서 온라인 쇼핑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다. 현재 미국 내 온라인 매출 비중은 오프라인 매출의 10%에 달한다. 한국엔 2011년 처음 디지털 스토어가 생겼다. 구찌 관계자는 “국내 매출 비중은 아직 미미한 편”이라며 “그러나 백화점과 면세점 등 여러 판매 채널 중 매출 신장률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이외에 페라가모와 팬디·이브생로랑·멀버리 등도 온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가상 피팅 시스템. 디자인·원단·단추 등을 선택하면 자신이 맞추려는 신사복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리 확인할 수 있다.

 브랜드별 온라인 매장뿐 아니라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럭셔리 제품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지난해 오프라인 럭셔리 브랜드 매출이 6.4% 성장하는 동안 온라인은 22.5%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국내 백화점 온라인몰은 럭셔리 브랜드를 정식 수입한 회사가 아니라 주로 병행 수입하는 회사가 임대로 운영하기 때문에 할인이나 쿠폰 등 다양한 프로모션 방법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만 인기 모델이 비교적 적고 이월상품이 많다.

 코치도 온라인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브랜드다. 지난해는 유명 유튜브 채널 운영자이자 힙합 뮤지션인 카르민과 스타 스타일리스트 레이철 조가 함께 만든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을 매체홍보에 이용해 인기를 얻었다. 레이철 조가 스타일링한 의상 대부분이 코치 제품이어서 유튜브에 오른 제작 현장 영상물로 자연스럽게 코치를 홍보할 수 있었다. 또 온라인 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하면 매장에서 액세서리를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e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 방문을 유도하는 마케팅인 셈이다.

 로에베는 웹사이트와 아이패드 앱으로 주문을 받는다. 고객이 이 브랜드의 아마조나 가방을 사기 전 소재와 컬러·장식 등을 원하는 대로 고르면 이대로 맞춰준다. 형태는 한 가지 디자인이지만 옵션에 따라 총 13만1265가지의 다른 백을 만들 수 있다.

 신사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맞춤 슈트를 주문하면 가상 피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원단과 디자인 등의 선택사항을 모두 고른 후 입력하면 앱을 통해 완성된 슈트의 모습을 가상으로 볼 수 있다. 제냐 관계자는 “이 같은 디지털 패턴 시스템을 통해 한번 슈트를 맞췄다면 전 세계 어느 매장에서도 똑같은 옷을 주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매장이 고객 정보를 다 공유하기 때문이다.

 패션쇼에 나온 옷을 곧바로 주문할 수 있는 곳은 아직 버버리뿐이다. 패션쇼를 생중계하고 있는 다른 브랜드들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옷을 바로 제작해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워서다. 다시 말해 버버리가 그만큼 앞서 있는 셈이다. 안젤라 아렌츠 버버리 CEO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며 “디지털 전략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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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기자

◆온라인 럭셔리 편집숍 어떤 게 있나

[백화점 몰]

국내 백화점의 온라인 쇼핑몰과는 완전히 다르다. 입점 수수료를 내고 들어온 상품 위주로 판매하는 국내 백화점 온라인몰과 달리 해외 유명 백화점은 철저하게 바이어가 고른 상품을 판매한다. 재고도 고스란히 백화점 몫이란 얘기. 재고를 안 남기기 위해 바이어가 심혈을 기울여 상품을 구성하기 때문에 백화점이 선택한 상품이 트렌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버그도프굿맨
(www.bergdorfgoodman.com)

세계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가 다 모여 있다. 스타일리스트가 구두와 주얼리 트렌드를 살펴볼 때 많이 찾는다. 가장 트렌디한 제품이 엄선돼 있다는 평을 받는다.

▶ 삭스핍스애비뉴
(www.saksfifthave.com)

세계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총망라. 버그도프굿맨보다 좀 더 캐주얼한 상품 등 더 다양한 상품을 갖춰놨다. 한화 가격 표시가 있다.

[정통 편집숍]

▶ 루이자비아로마
(www.luisaviaroma.com)

이탈리아 유명 편집숍의 온라인 스토어. 발렌티노·랑방·지방시 등 전통 있는 럭셔리 브랜드가 모여 있다. 클래식한 브랜드의 최근 동향을 살펴볼 수 있다. 비싼 가격이 부담된다면 세일 코너를 노려보자. 50~70%까지 할인된 가격에 ‘득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국어 표시는 안 되지만 한화로 가격이 표시돼 보기 편하다.

▶ 영국 네타포르테
(www.net-a-porter.com)

영국 최대 온라인 패션 쇼핑몰. 한 권의 패션 잡지 형식으로 구성돼 있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소속 에디터가 최근 이슈를 정리하고 이에 맞는 상품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다. 이 상품을 클릭하면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창으로 연결된다. 가장 최근의 컬렉션 옷을 살 수 있어 패션 리더가 많이 찾는다.

▶샵밥
(www.shopbop.com)

국내에 잘 알려진 온라인 편집숍.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보다 조금 더 캐주얼하고 독특한 개성이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모여 있다. 뮈글러, 디스퀘어드2,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등이 대표적.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비교적 싼 상품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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