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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을 폭로한다|「어제」와 「오늘」을 말하는 두 망명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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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반세기전, 다시 말해서 지금부터 50년전 오늘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었는데 그만 놓치고만 운명이 되었다.

<눈 뜬 지식인들>
1917년 당시 제정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2세는 오랜 전제의 좌에서 밀려났으며 신 사조에 눈 뜬 지식인들에 의한 새 질서가 1억6천만 「러시아」국민들 앞에 전례 없는 민주주의를 안겨다 주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그만 「레닌」이 파괴와 음모, 그의 독특한 선동적 방법으로 노동자·농민, 그리고 붉은 군대를 동원하여 「케렌스키」의 과도정부를 무너뜨리고 「러시아」에 공산 독재를 심고 만 것이다.
「케렌스키」, 제정 「러시아」에 민주정치를 실현시키려다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이 역사의 주인공은 살아서 전설적인 인물이 돼가고 있다. 「러시아」혁명 50주년을 맞는 올 해, 그의 나이는 86세.
「스탠퍼드」대학서 교편을 잡으며 한적한 주택가의 벽돌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케렌스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역사적 과업을 달성치 못한 집념이 도사리고 있다.
『「레닌」이 권력을 쥔 것은 혁명 덕이 아니고 「쿠데타」야. 그리고 조국을 팔아 독일에서 받은 4백만 「마르크」의 돈의 힘이야.』
1917년대의 「러시아」는 5백만명에 달하는 전쟁 희생자가 거리를 메우다 시피 했고 독일의 「스파이」와 이와 공모한 「볼셰비키」분자들이 암약, 민심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제정은 오랜 전제로 국민에게 염증을 느끼게 했고 괴승 「라스프친」의 황후를 싸고돈 장난질은 황실을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어 그 해독이 전국에 번지고 있었다. 노동자·농민의 원성은 극에 달해 제정 「러시아」는 금방 피를 볼 것 같은 위기에 처했었다.
이럴 때 약관 36세의 사회혁명 당원인 「케렌스키」는 무너져 가는 제정 「러시아」의 조타수가 되어 새 항로를 찾는 중책을 지녔던 것.

<과도정부 수상에>
과도정부의 수상직에 오른 「케렌스키」는 과업을 수행키 위해 4대 시정방침을 선포했다.
①「러시아」군을 서부전선에서 계속 싸우게 한다. ②전국에 실제적인 행정조직을 확립한다. ③정치·사회개혁을 실시한다 ④「러시아」를 연방국가 체제로 만든다.
「케렌스키」와 그의 협력자들은 왕성한 투지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 과업을 착착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의회정치의 실현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섰으며 권리와 의무를 요체로 하는 민주주의의 화려한 꽃이 곧 만발하려는 역사적 순간에 놓여있었다.
이럴 때 독일군 최고사령부는 『「러시아」군대가 수습 못 할 혼란에 빠져 있다』는 「스파이」 보고에 따라 미국이 구주 원정군을 보내기 전에 영·불 연합군을 격파하려고 동부전선에 배치했던 대군을 서부전선으로 옮기고 있었다.

<「레닌」의 선동>
한편 「레닌」은 이 북새통을 틈타 1천2백만 「러시아」 군장병에게 선동 「팜플릿」을 뿌렸다. 『장병 여러분! 사회혁명에 참가하라. 누구를 위해 개죽음을 하겠는가. 국내에 있는 장병 여러분의 적을 먼저 처치하라!』 그리고 노동자·농민에게는 얼마든지 토지를 주겠다고 선전했다.
1917년 10월 12일 「트로츠키」의 지도 밑에 있던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를 독일군의 침략에서 구한다는 명목으로 「페트로그라드·소비에트」내에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이들의 속셈이 「케렌스키」정권의 타도에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케렌스키」에 대한 비난성은 자꾸만 높아 단독강화의 소리가 군부내에 까지 고조됐다. 「레닌」의 왼팔 「카메로프」는 「페트로그라드」에서 사회주의자가 「케」정권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이간시켰고 「볼셰비키」에 가담하도록 포섭 공작을 벌였다.

<고군 분투 끝에 좌절>
이에 대해 「케렌스키」는 거의 고군 분투
10월 20일 「레닌」은 망명길에서 「러시아」로 되돌아왔다.
「레닌」의 「붉은 군대」는 「페트로그라드」의 전신전화국, 우체국, 주요 정부청사 등을 점령했다.
10월 24일 밤에서 25일 아침까지 「케렌스키」는 전선으로부터의 원정군의 도착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25일 아침 느지막해서 수송편 철도가 절단된 것을 알았다.
「러시아」사상 최초이며 최후인 민주적 과도정부의 각료들은 동궁에 집결,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케렌스키」는 살짝 동궁을 빠져 나와 대담하게도 「페트로그라드」시가를 가로질러 비교적 안전한 전선까지 가서 그곳에서 병력을 집결,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를 내몰아 치려고 했던 것.
그러나 그의 장도는 허탕으로 끝나고 「러시아」땅에 점화하려던 민주주의의 불꽃은 영원히 사그라지고 말았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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