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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승인·패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공화당의 재집권을 굳혀준 박정희 공화당 후보의 압승은 안정과 건설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신임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거에서 박 후보는 안정기의 조국근대화, 경제건설을 통한 미래상을 투영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은 성공했으며 이를 토대로 『제2차 경제개발계획을 완수해야 하겠다. 만약 야당이 집권하게 되면 이러한 건설계획은 중단되고 조국은 10년 이상 후퇴한다.』는 공화당의 「캐치프레이즈」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한 셈이다. 또 이러한 「캐치프레이즈」는 민정 3년 반 동안 정부의 꾸준한 PR로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또 하나 거미줄처럼 펼쳐진 공화당의 방대한 조직과 이 조직을 움직여간 막대한 자금도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여당 유세의 청중동원에서 조직과 자금의 위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 위력은 그대로 투표에까지 연결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전국적으로 고루 얻어진 여당의 지지는 이것을 실증하고 있다.
여기에 곁들여 변동과 혼란 보다 안정을 추구한 유권자의 기표성향이 여당 지지표를 보탰다. 이 같은 여당의 이점은 상대적으로 야당전열의 허점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은 것 같다. 윤 신민당 후보는 공화당 정부를 비민주·비복지·비민족적 정권으로 규정했었다.
특히 여당이 자랑하는 조국근대화란 이름의 경제개발계획은 소수 특권층의 부의 축적에 봉사하고 있을 뿐 대중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중은 수탈 당하고 있다는 부정론을 내세웠다. 우리가 집권하면 대중이 고루 잘 살수 있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 여당의 근대화에 맞선 야당의 「캐치프레이즈」였고 그에 따른 많은 공약을 쏟아놓았다.
그러나 야당은 민정 3년 반 동안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는 파동 속에서 국민으로부터 신뢰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 위에 과열된 투쟁의식에 치우쳐 정책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야당의 체질은 야당의 공약에 가능성과 현실성을 실감하게 하지 못한 것 같다.
또 하나 조직면에서도 현저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윤 후보는 대통령 선거공고 직전 통합을 실현시키고 실질적인 야당 단일후보로 올라섰다.
그러나 재야우당의 유대마저 무너지고 여에 대해서 보다 상호간의 불신과 적의가 더 강하게 풍겼던 민중·신한 양당의 대립은 통합에 대한 유권자의 실감을 냉각시켰다. 그 위에 통합의 추진체였던 4자회담의 백낙준씨와 이범석씨의 이탈, 박순천 전 민중당 대표위원의 소극적인 태도는 지지세력의 폭을 좁혔다.
또 실질적으로도 조직은 통합되지 못했다. 중앙당은 엉성하게나마 하나로 결합했지만 각지구당의 민중·신한 양파는 화학적 결합에까지 나아가 있지 못했고 더러는 마찰을 일으킨 곳도 있어 선거운동은 통합작업과 병행되어야 했다.
이러한 여·야의 태세 및 여건의 차이와 함께 박·윤 두 후보의 인기에도 거리가 있었고 이것이 승패의 더 큰 요인이 되었다는 공화당의 풀이도 흘려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박 후보의 「이미지」는 민정 3년을 겪는 동안 「부지런하고 일하는 대통령」으로 유권자의 머리에 새겨졌다. 그의 경제건설에 대한 깊은 관심, 조국근대화를 위한 의욕은 높이 평가 받았다.
그에 비해 윤 후보는 야당이 겪은 파동에 휩쓸려 많은 상처를 입었다.
야당세력의 이합집산, 윤 후보 마저 휩쓸려든 민정당의 세칭 「진산파동」이나 한·일 협정을 둘러싼 이른바 강·온파의 분열은 윤 후보의 영도에 대한 평가를 낮추었고 또 많은 구김살까지를 가져오게 한 것 같다.
또 하나 이번 투표성향에서 나타난 도시와 농촌의 평준화 현상은 안정과 이해에 대한 유권자의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도시의 야당성향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두 차례 정치변동의 혼란을 겪은 도시민의 안정추구로 풀이된다.
따라서 극한으로 맞선 여·야의 대립으로 보아 정권의 변동이 가져올 혼란을 느끼고 이를 기피한 것은 여당에 이점을 보탰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농촌의 현저한 야당진출 등 승자인 여당에 대해서도 하나의 경고를 남겼지만, 그보다는 야당이 패배의 원인에서 많은 문제점을 찾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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