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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질서를 지키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주적 의지>
방방곡곡을 누볐던 선거의 열풍도 사라지고 투표도 거의 끝났다. 이제 우리는 4년마다 한번씩 뽑는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될 것인가의 마지막 판가름만 기다리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론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남은 것은 이 숨가쁜 시간을 어떻게 질서 있게 보내느냐 하는 것 일 것이다. 난동이 있어서도 안되겠고, 물론 부정이 개재될 수는 없다. 표를 바로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표를 바로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한 것인가는 되씹기도 싫은 지난 역사의 체험이 너무도 웅변히 말하여 주고 있다.
이번 선거가 투표까지 이르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대체로 격앙된 대립보다는 정책의 목표를 놓고 설득하려는 자세를 각당이 유지하고 있었던 까닭에 그래도 평온한 분위기였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평온이 어떤 이유에서 온 것이었든 다행한 것이었다고 보며 또 그것이 개표가 끝나고 당락이 결정 될 때까지 유지되기를 바란다.
만일에 오늘 이시간 이후에 어떤 난동이 오고, 부정이 저질러지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적대 행위가 전개된다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고하게 될 것이다. 선거과정 및 투표과정에서 표시했던 향상된 민주주의 역량을 총집결시켜 이제야말로 우리는 이시간의 평온을 위해 진력하여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상기되었던 머리와 적개심을 식히고 민주주의가 주는 운명의 판결을 엄숙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또 모든 개표 업무 종사자들은 스스로의 손에 한국 민주주의의 사활이 달려 있다는 것을 각별히 명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국민과 정당인과 선거사무 집행자들은 지금부터의 시간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가 연명을 거는 시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겠다는 말이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고 한표 한표로 표시되는 주권자의 의지가 정당하게 관리되지 못하거나 정직하게 계산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비극적인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실상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공개하여야만 하는 우리의 처지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이미 비극적이다. 그러나 신생 민주주의가 겪어야하는 이런 창피, 이런 고난을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를 살리느냐 죽이느냐하는 모든 결정이 우리 손에 달렸다. 우리는 공명과 평온을 피맺히게 호소하며 그 수호를 결의한다.

<평온의 질서>
위에서도 지적한대로 5·3으로 이르기까지의 길은 비교적 평탄하였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선거법에 구속 조항이 많아 지난날처럼 가두방질 따위로 거리를 시끄럽게 하지 못했던 데에도 그 평온의 원인이 있다 할 수 있다. 그밖에 투표자의 정치적 의식이 높아졌다. 혹은 정치적 불감증이 극도로 촉진되었다, 하는 이유 등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유야 어떻든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지난날처럼 구속 사태가 있었다던가 「테러」 행위가 잦았다던가 하는 사태는 전개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또한 비록 쟁점은 두드러지게 뚜렷한 것이 못되었고 밀도도 사뭇 부족하였거니와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전진에 과연 얼마나 크게 공헌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도, 각 당은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정책 대결의 자세로 임했다. 국민에게 맹목적 복종을 강요했던 게 아니라 국민을 향해 설득하려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양당 대결의 양상도 보여 주었다.
물론 한편엔 유세 청중 동원을 둘러싼 말썽이 크게 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선거 운동이 이례적으로, 아니 비정상적으로 유세 청중 동원 경쟁으로 끝난 감이 없지 않아 그것 때문에 많은 시비가 오고 갔다. 강제동원이다, 매수다, 자발적이다, 하는 상호 응수가 한 때 불을 뿜었다.
그런 사태를 가져온 바탕을 잠깐 생각해보면「매스·미디어」가 완전하게 전국을「커버」하지 못한 데에도 한 큰 원인이 있다 할 것이고, 그런 이례적 선거 운동 방식은 앞으로 시간을 두고 꼭 재검토되어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제쳐놓는다면 선거 분위기는 그래도 무난하였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어느 선거 때보다도 평온한 분위기였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일은 그와 같은 평온의 질서를 끝까지 유지시켜야할 일이다. 만사는 그 과정보다는 시초가, 그리고 그 시초보다는 끝맺음이 보다 중요하다. 모처럼 이룩한 평온의 질서와 모처럼 켜진 민주주의 성장의 청신호를 유지하는 일, 그것은 이번 선거를 유종의 미로 장식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이제부터의 시간을 질서 속에 보내고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길러 가야 하겠다. 모든 계층의 국민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쇠가 달려 있는 이 시간을 주시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모든 정당인들은 담담한 마음, 민주 시민의 질서의식 속에서 최후의 판가름을 고요하게 기다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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