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표 사퇴 파장] 한나라 당권투쟁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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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표 실패'의 후유증은 컸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당을 두번 죽인 사람이 누구냐"는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서청원(徐淸源)대표가 28일 사퇴결심을 밝혔다.

徐대표는 지난해 5월 경선으로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된 이래 이회창(李會昌)대통령후보 다음으로 2인자의 자리를 지켰다. 당권.대권 분리체제에서 강력한 당 대표였고, 대선의 총지휘자였다.

공룡정당에다 민정.민주계, 영남.수도권, 보수.진보의 무지개 세력연합인 한나라당이 '이회창 공백상태'에서 공중분해될 것이란 우려를 徐대표는 잠재웠다.

과도.비상기구인 당 개혁특위(위원장 洪思德)를 출범시켜 변화의 틀을 만들어 놓은 데다, 노무현(盧武鉉)당선자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협력으로 패전야당의 면모를 그런대로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徐대표는 이날 재검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일부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대선과정의 후유증을 깨끗이 털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길 바란다"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당선 및 선거무효소송도 취하토록 했다.

徐대표는 '퇴장의 미학'의 이미지를 남기는 것과 함께 3월에 있을 당권경쟁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운신의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정치적 계산도 한 것 같다.

徐대표의 퇴장으로 한나라당은 격랑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혁특위와 당내 개혁모임인 '국민속으로'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徐대표가 기득권 중진의원들의 이익을 보호하며 당의 변화 욕구에 김을 빼고, 대여 강경투쟁으로 내부개혁을 호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실제로 '국민속으로'는 이날 재검표 책임자의 인책을 주장했다. 따라서 개혁을 앞세운 소장파들은 이른바 '이회창 3인방' 등 구세력의 인적 청산을 공개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徐대표 주변의 최고위원 등이 그의 사퇴를 만류한 것도 중재자없는 당의 앞날을 우려해서다.

대표대행이 누가 되든 당 장악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시각이 많다. 설 연휴 뒤 최병렬(崔秉烈).김덕룡(金德龍).강재섭(姜在涉)의원을 중심으로 차기 당권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란 예상도 그래서 나온다. 서청원.홍사덕.이부영(李富榮)의원 등은 당권도전 포기를 선언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직접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朴槿惠)의원 측도 '당 얼굴'로 손색이 없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노선투쟁과 당권경쟁이 어우러지면서 한나라당은 백가쟁명 시대로 접어들 전망이다.

그 와중에 일부 세력의 탈당 등 정계개편이 시작될 수도 있고, '노무현 시대'의 견고한 야당으로 새로 탈바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력재편의 신호탄이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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