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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윤보선 두 후보 이모저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통령의 자리란 것이 흔히 생각하듯이 화려하고 쉬운 것이 아니야. 때로는 고달프고 쓰라릴 때가 많거든』―박정희 공화당 후보는 유세 떠나기에 앞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 고된 자리를 다시 4년간 더 맡으려는 것은 『모처럼 이룩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결실을 제2차 5개년 계획을 매듭짓는 것만이 위정자의 의무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가난은 나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그러므로 나의 24시간은 이 스승, 이 은인과 관련 있는 일에서 떠날 수가 없다.』(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는 박정희씨. 그래서 그는 빈곤을 몰아내는 일만을 사명으로 믿고 있는 신념의 정치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 후보는 정치보다는 경제, 정치적인 것보다는 행정적인 것에 열성적이다. 실상 그는 어느 정치 지도자보다도 많이 지방을 돌아 조그만 건설 사업도 직접 눈으로 살피고 때로는 농부와 막걸리 잔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어떤 치사나 연설을 할 때도 원고를 놓고 하는 법이 없지만 각 분야에 걸친 지식과 정확한 숫자는 전문가들을 감탄시킨다. 이런 점을 가리켜 혹자는 『대통령으로서 너무 소상하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대는 옛날과 달라 대통령이 관저에만 앉아 권위만 내세울 시기가 아니라 직접 모든 일에 관해 알고, 관여 지도할 줄 알아야한다』면서 선진국의 예에 비기는 사람도 있다.
겉보기에는 딱딱하게 보이는 박 대통령이지만 그를 대해본 사람은 다 느끼듯이 아무하고도 소주잔을 나누고, 거짓없는 소탈한 그의 성품과 잔인정은 많은 사람을 따르게 한다. 집무 후 시간만 나면 집안 애들과 「피아노」도 치고 그림도 그리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경제문제나 행정력과 상관없는 박 후보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놀라운 「발전」이 있다고들 한다.
윤보선 신민당 대통령 후보―. 그는 하루 5백리길을 달리며 세 곳에서 선거연설회를 갖는 유세 강행군을 한다.
유세반에는 참모가 따른다. 아침식사는 「토스트」나 「샌드위치」 달걀 「코피」. 바쁘면 점심도 같은 「메뉴」,그리고 취침할 무렵엔 꼭 달인 한약을 든다. 이것이 그의 건강비결일지도 모른다.
그는 또 일요일이면 유세지에서도 꼭 교회를 찾는 독실한 기독교인―. 그래서 술과 담배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런 생활이 일흔의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을 지탱하게 했고 또 간편한 식사가 유세강행군에는 안성마춤인 것도 같다. 그의 건강은 또 만만찮은 투지의 원천으로도 풀이된다. 그는 민정 3년반 동안 여당과 타협 없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한·일 협정을 『매국』으로 단정했고 월남파병을 『청부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여당에 강타를 계속 가해온 그에게 선거전은 투쟁의 계속일 뿐이다.
『소수특권층과 짜고 정권연장만 생각하는 게 박 정권이야. 농민· 노동자·봉급자 등 절대다수의 국민은 박정희씨의 편이 아니라 야당의 맹우야. 그러니까 부정선거로 정권을 억지로 연장하려는 거야.』 강경론의 기수다운 철저한 부정이다.
그는 한번도 박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았듯이 지난번 선거에서 실질적으로는 이겼다고 확신하고 있고 이번 선거에서도 공명선거만 되면 승리한다는 것―.
박 후보와의 두 번째 경주에 뛰어든 것을 두고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대답이 있다. 『나는 정치적으로는 실권 없는 대통령이긴 했지만 내 생애를 통해 괴로왔다면 괴로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청와대 1년반이다. 나는 결코 대통령이 영광된 자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고달프고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는 거다. 애국자는 나라 일에 후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야당의 후보라는 십자가를 지고 적전상륙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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