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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전 얼굴에서 기쁨·슬픔 교차하는 불이를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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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음의 혁명가. 올해는 중국 선불교의 육조(六祖) 혜능(惠能·638∼713)이 열반한 지 1300주년이 되는 해다. 나무꾼에 문맹이었던 혜능은 단박에 불교의 진리를 깨우친 후 누구나 스스로 마음을 닦으면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뭇 중생을 위로한 정신의 혁명가, 동아시아 선불교의 뿌리다. 한국 선불교도 그에게서 나왔다. 그의 흔적이 밴 중국 선종 사찰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육조 혜능은 누구나 본성을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혜능의 진신상이 있는 중국 광둥성 남화선사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오전 예불을 드리고 있다. 남화선사는 8월 3일 혜능 열반 1300주기 기념 법회를 열 계획이다.

지난달 25일 중국 광둥성(廣東省) 제2의 도시인 사오관(韶關)시.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감사(大鑑寺)는 한산했다. 월요일인데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일 게다. 300년쯤 됐다는 보리수 두어 그루가 참배객 없는 자그마한 사찰을 조용히 지키고 있다. 번잡한 바깥 세상이 지척인데도 거리의 소음이 아득하게 들린다.

 대감사는 육조 혜능이 처음으로 대중 강연을 한 개당(開堂) 설법도량(設法道場)으로 유명하다. 당시 절 이름은 대범사(大梵寺)였다. 육조 선(禪) 사상의 전모가 응축돼 있는 설법집 『육조단경』의 첫 번째 문장은 동아시아 선종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인 혜능의 첫 설법 순간을 그저 덤덤하게 전할 뿐이다.

 “혜능대사가 대범사 강당의 높은 법좌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고 무상계(無常戒)를 주시니, 그때 법좌 아래에는 스님·비구니·도교인·속인 등 1만 여 명이 있었다.”

 당시 사오관은 지금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을 것이다. 요즘 시류에 견줘도 1만 명은 엄청난 숫자다. 『육조단경』은 혜능의 상좌인 법해(法海)가 기록한 것이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을 발휘한 것일까. 어쨌든 지금의 대감사는 1만 명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작다. 예상대로 절은 현대에 들어와 중창된 것이었다.

 손님을 대접하는 지객(知客) 소임을 맡고 있는 20대 후반의 푸즈(普至) 스님은 “1980년대 중반에 절을 새로 세웠다”고 소개했다. ‘1만 명의 비밀’을 물으니 뜻밖에도 지금 대감사는 장소를 옮겨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원래 대감사 자리는 도시 개발로 건축물이 들어서 흔적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머쓱해져 절문을 나서려는데 뜻밖의 장면이 눈길을 붙든다. 이 절은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 옆에 혜능의 육조상을 나란히 모셔 놓고 있었다. 각각 지옥과 사바(娑婆)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地藏)·관세음(觀世音)과 같은 반열의 신앙 대상으로 혜능을 받들고 있는 거였다.

 『육조단경』은 혜능의 열반 당시를 소상하게 전한다. 열반일인 713년 8월 3일, 혜능은 제자들을 불러모은 후 자신의 법통(法統)의 비밀을 밝힌다. 석가모니 부처에서 시작해 숱한 인도의 현자들을 거쳐 중국 선불교의 초조(初祖) 달마에 이른 불맥(佛脈)을 이어받았다는 것. 자신이 불가의 40대 적통(嫡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혜능이 오늘날 동아시아 선불교의 뿌리이자 광범위한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는 이유는 단순히 이런 ‘족보’ 때문이 아니다. 현대인의 생활감각에 부합하는 특유의 선 사상과 여전히 매력적인 그의 논리체계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가령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 일화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깃발을 두고, 움직이는 당체(當體)가 무엇이냐, 깃발이냐 바람이냐, 사이에서 소득 없는 논쟁을 벌이던 스님들 사이에 끼어들어 움직이는 것은 바로 당신들의 마음이라고 일갈했다는 절묘한 사자후(獅子吼) 말이다.

 혜능은 이 짧은 한 마디 말로 일약 중국 선불교의 오조(五祖)인 홍인(弘忍)의 인가를 받은 육조임을 드러낸다. 여기서 혜능의 눈부신 성공 스토리만을 읽는 이는 이야기를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문답의 메시지는 외부 현상은 덧없고, 어쩌면 마음의 작용에 불과할 뿐이라는 불가의 진리로 향한다.

남화선사에 있는 혜능의 진신상. 열반 후 법체를 3년간 보관했다가 옻칠을 한 1300년 전 진신상이다.

 무엇보다 혜능의 공덕은 그 마음의 비밀을 밝힌 데 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깨끗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깨끗함을 고집하면 또 하나의 집착을 부를 뿐이다. 매인 데 없는 무념(無念)의 경지에서 허망한 생각의 먼지를 떨어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깨끗함이다.

 이런 사고 체계 안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만 제대로 보면 깨달은 자, 부처가 될 수 있다. 그것도 단박에.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는 좌선(坐禪)은 스스로 몸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다는 돈오(頓悟),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참선을 실천할 수 있다는 ‘좌선 비판’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감사 입구에는 아침부터 ‘인민’ 몇 명이 나와 몇 푼 위안화를 구걸하고 있었다. 이들을 뒤로 하고 남화선사(南華禪寺)로 향했다.

 남화선사는 사오관으로부터 20㎞ 남쪽에 위치해 있다. 빡빡한 순례 일정에 잠시 졸았나 싶었는데 차량은 벌써 절 앞에 도착해 있다.

 남화선사에서는 한국 선불교와 중국 선불교 사이의 친연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찰이 안긴 조계산(曹溪山) 이름에서 한국 조계종의 ‘조계(曹溪)’가 나왔다.

 풍번문답을 통해 10년 넘는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정식으로 출가를 한 혜능은 남화선사로 왔다. 열반 직전까지 40년 가량 교화에 힘쓴 그의 행화도량(行化道場)이다.

 그런 인연에 걸맞게 남화선사에는 혜능의 진신상(眞身像)이 모셔져 있다. 열반 후 그의 법체(法體)를 숯과 함께 3년간 항아리에 모셨다가 꺼내서 옻칠만 한 게 현재의 진신상이다.

 대감사와는 딴판으로 남화선사에는 참배객이 많았다. 지객 스님으로부터 진신상 접근을 허락받았다. 바로 코 앞에서 혜능을 봤다. 진애(塵埃·티끌 먼지)에 찌든 속인의 눈으로는 그의 표정이 잘 읽히지 않았다. 기쁨과 슬픔, 혹은 고통이 동시에 비치는 묘한 표정이다. 1300년 전 불상의 표정을 읽는다는 자체가 덧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찰 깊숙히 모셔진 진신상에 닿기 위해서는 중간에 ‘남종불이법문(南宗不二法門)’이라는 주련(柱聯·기둥에 세로로 써 내린 글귀)이 붙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가산불교문화원의 김영욱 책임연구원은 “혜능의 불법을 단적으로 불이(不二)의 법이라 말한다”고 밝힌 바 있다(『왕초보 육조단경 박사 되다』).

 “지혜와 어리석음, 선과 악, 자아(我)와 무아(無我), 유와 무 등” 이 세상은 서로 대립되는 두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거다. 대립항들의 한 쪽만으로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한쪽 항들을 영원히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립의 양 편이 구체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나’ 혹은 ‘너’라고 하는 독립된 개체가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불교의 핵심 진리, 중도(中道)다.

 어쩌면 복잡한 혜능의 표정은 그런 중도의 표정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남화선사(광둥성)= 글·사진 신준봉 기자

◆『육조단경』 강좌= 혜능 열반 1300주기를 기념해 ‘육조단경 대강좌’가 열린다. 고우 스님이 법사로 나서 8일부터 매달 한 차례, 11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육조단경』 한 권을 뗀다. 매월 둘째 주 월요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백련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 조계종 불교인재원(이사장 엄상호) 공동 주최. 15만원. 02-735-2428, 166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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