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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우리 해경대원 네 명 석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중공 신화사통신이 19일 중공 당국에서 석방했다고 발표한 한국 해경대원 4명의 신원은 당시 해안경찰대 소속 김창호(현재 나이 41·북제주군 조천면 신촌리 233) 경사, 주시완(43·부산진구 부전 2동 543의 15호) 순경, 안영진(41·충북 보은군 수한면 묘소리 2구 83) 경사, 박내봉(41·부산시 서대신동 3가 45) 순경으로 밝혀졌다.
12년 전인 55년 12월 25일 흑산도 근해 평화선에서 중공어선 20여척을 취체하다 그들에게 에워싸여 5시간 동안 교전 끝에 중공어부들에게 끌려간 이들 4명은 66년 12월 3일 만 11년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 출감, 「홍콩」주재 영국정청을 통해 귀국을 교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9일 하오 5시 주「홍콩」 총영사관에 신병이 인수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중공어부들에 의해 납치됐던 이들은 12년 전 「크리스머스」날 새벽 4시 50분쯤 흑산도 서남해안 평화선 안에 나타난 중공어선을 검문하기 위해 해안경비대소속 855호 함정(견우호 1백81톤)을 타고 28명의 다른 해경원과 함께 중공어선 20여척을 정지, 납치된 4명이 그 중 1척에 승선했을 때 무장한 중공어부들이 발포, 끌려갔던 것이다.
「견우호」는 당시 정장 현복동 경위(현재 퇴직)와 부장 허준 경감(현재 부산 해경대 경리계장) 등 전 승무원이 납치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어둠을 뚫고 5시간을 교전했으나 우리 경비정이 「레이더」가 없는 데다 중공어선은 박격포로 무장, 무전연락으로 20여척이 「견우호」를 포위하여 「견우호」는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 뒤 「견우호」는 피해가 커서 2년 후에 폐선 됐다.
중공에서 1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돌아 올 김창호씨는 당시 제주에 아내 강희련 여사를, 안영진씨는 아내 이금순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뒀었고, 박내봉씨는 아내 황정도씨와 1녀를 뒀었다.
이들은 당시 해무청 해안경비대에 입대, 대부분 1년만에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석방 경위>
외무부에서 알려진 이들의 석방 경위는 다음과 같다.
▲66년 12월 3일=형기 만료로 출감 ▲67년 2월 8일=주「홍콩」 총영사가 「홍콩」 정청에 대해 이들에 대한 「홍콩」 입경 사증 발급을 요청 ▲67년 2월 24일=「홍콩」 정청은 주북평 영국대사관으로부터 이들이 입경 사증 신청을 했음을 확인했다고 한국 총영사관에 통고 ▲67년 3월 13=「홍콩」 정청이 입경 사증 발급 ▲67년 4월 19일=「홍콩」 도착, 한국 총영사관에서 신병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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