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저녁 나온 가판신문 정치권·기업에 악용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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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내 중앙 조간 신문들이 발행일 전날 저녁 판매하는 가판신문이 독자들에 대한 속보(速報) 서비스보다 정치권과 기업의 로비에 주로 이용되는 등 폐해가 많다는 실증적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가판신문은 대부분의 조간신문사가 가정에 배달되기 전날 오후 6시쯤에 서울시내 가두판매를 위해 1만부 안팎씩 발행하는 초판신문으로 조.석간시장이 뚜렷이 구분되는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형태다.

이종혁(李鍾赫.33.미국 오하이오대 언론대학원 객원연구원)씨는 최근 한국언론학회보 겨울호에 '가판근무 게이트키핑 유형과 이에 대한 언론홍보 실무자들의 평가'라는 논문을 실었다.

李씨는 이 논문에서 대기업.관공서 등의 홍보 실무자들이 가판신문의 기사를 체크해 불리한 기사가 실렸을 경우 ▶삭제▶수정▶멘트 삽입▶오보 정정▶기사 축소▶익명 처리▶기사 교체▶제목 수정 등 8개 유형의 활동과 청탁을 펼친다고 밝혔다.

그는 "홍보 실무자들조차 가판신문에 근거한 이런 활동을 다른 홍보활동에 비해 비효율적.비윤리적이라고 평가했고, 특히 홍보 경력이 많은 사람과 홍보 관련학과 졸업자가 가판에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고 분석했다.

또 "기자들과의 학연.지연.혈연 등 사적인 친분관계를 중시하는 성향을 지닌 대기업이나 정치권의 홍보관계자들은 자사에 불리한 기사를 광고로 뺄 수 없을 경우 비공식적인 관계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李씨는 "우리 사회에서 비판의 대상이 돼온 가판제도와 관련해 홍보 주체인 각 조직과 실무자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중앙일보가 가판을 폐지한 이후 기업체나 정부기관 홍보활동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2001년 10월에 가판신문 발행을 폐지했다.

많은 언론학자는 "가판신문 발행은 각 신문사가 다른 신문사의 다음날 조간을 미리 보고 기사를 손질해 결국 서로 비슷해지는 지면의 '붕어빵 현상'을 초래한다"며 "언론과 정치권력 또는 기업의 뒷거래를 막고 신문의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선 가판제도가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tw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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