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재입북 4차례 … 서울에 어머니·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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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밤 어선을 타고 월북한 이혁철(28)씨가 연평도에 들어온 건 1주일 전인 3월 21일이다. 연평도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해 있어 군사적·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탈북자인 이씨가 꽃게잡이 어선에서 일하기 위해 연평도에 들어가기까지 이를 저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4일 “하나원(탈북자 적응시설)을 나온 뒤 주민등록증을 받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리기 때문에 탈북자가 어디를 가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동 시 신고를 해야 했는데 이를 어긴 것 같다”며 “수많은 탈북자의 동선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3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2만4934명이다. 탈북자는 중앙정부 합동신문을 거쳐 하나원에서 3개월간 정착교육을 받는다. 이후 2년 정도 경찰이 신변보호 차원의 지원을 하지만 세밀한 관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교육이 끝난 뒤에는 탈북자의 이사나 신변변동 등에 대한 신고는 받지 않는다”며 “2만4000명을 공무원들이 일일이 챙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귀순 당시 이씨는 정부 조사단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국경수비대에 뇌물을 주고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적이 있지만 (한국 귀순 전) 탈북은 탈북이 아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어머니와 형이 서울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발적으로 북한에 세 차례 돌아간 적이 있지만, 이씨는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고 해병대가 있는 포항에서 선원 생활을 하다 연평도까지 들어왔다. 두 곳 모두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이었지만 탈북→재입북을 되풀이한 그의 전력은 누구도 점검하지 못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씨와 동료 선원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며 “동료들이 ‘탈북자가 일도 못한다’며 핀잔을 줬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선을 훔쳐 월북하면서 선주에게 휴대전화로 폭언과 함께 “잘 먹고 잘 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평도에 탈북자가 취업해 들어가는 위험성과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사과했다. 특히 군·경 합동수사단은 이씨가 선원 생활을 했던 포항의 해병대와 연평도에서 우리 군의 대응 태세와 관련 기밀 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조사하고 있다.

 청와대는 탈북자 관리 제도를 재검토할 계획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탈북 전력이 있는 이씨가 NLL 근처에서 배를 탔다는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며 “민감한 부분과 지역에 대해서는 정부 기관과 협의해 신원조회 시스템 등을 보완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과 경찰·군 등 관계 기관이 함께 탈북자 관리제도에 대한 개선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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