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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쫓는 최영 사당 마을제사 보러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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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4일 부산시 동구 범일동 자성대공원 최영장군 사당에서 한 시민이 참배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4일 부산시동구 범일동 자성대공원 서쪽 자락을 오르니 작은 비각이 나타난다. 최영장군 사당이다. 문을 여니 가운데 최영장군 비와 영정이 놓여 있고, 좌·우측에 ‘국태민안(國泰民安)’, ‘충효위국(忠孝爲國)’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이러한 최영장군의 사당은 자성대 외에도 남구 감만동 무민사(武愍祠), 수영성 동문 밖 무민사, 영도 봉래산 중턱 등 부산에 모두 4곳이 있다.

감만동 무민사 사당은 조선 말 왜구가 자주 출몰했던 바닷가에 세워졌다.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가 사당을 철거한 뒤 책임자였던 일본군 중위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놀란 일제가 비석을 다시 세우고 매달 음력 9일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지금은 무민사 사당보존회가 양력 4월 20일마다 마을제사를 지낸다.

수영성 무민사가 있는 선사바위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수영 향토 의병결사대 25명이 의병을 맹세한 바위라고 전한다. 그 바위 옆 팽나무는 최영장군이 휴식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수영향우회가 해마다 음력 3월 3일에 마을제사를 지낸다.

 영도 봉래산 중턱에 있는 최영장군의 제당은 장군에 얽힌 러브 스토리가 전해진다. 당시 탐라국에서 조랑말을 기르는 몽고인들이 명나라에 바칠 말을 바치지 않자 장군은 토벌하러 간다. 정벌이 끝난 뒤 장군은 탐라국 여왕을 첩으로 삼고 몇 년을 살다가 조정으로 떠난다. 여왕은 장군이 모함을 받고 절영도(영도)에 유배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으러 왔다가 고독한 넋이 됐다고 한다. 여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아씨당을 세우고 최영장군의 제당인 산제당을 지었다고 한다.

 주경업(72) 향토사학자는 “강직했던 최영장군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면 왜구의 침입을 막아 줄 것으로 믿는 현상들이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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