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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 이만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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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회과학 중에서 가장 뒤늦게 출현한 사회학은 해를 거듭해감에 따라 급속히 미국에서 발전해 가고 있다. 미국에서 사회학과가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1893년, 사회학회가 설치된 것은 1905년이었다. <필자=미 델라웨어 대학 초빙교수>
그때의 사회학 회원은 1백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7배로 늘고 2차 대전 후에는 더욱 증대하여 매년 평균 10%의 비율로 늘어서 1960년에는 6천명 이상으로 불고 있다. 오늘날 사회학을 가르치지 않는 대학은 거의 없다.
1958∼59년 사이에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6백41개 대학이 그해 도합 7천명의 사회학 전공학사를 배출했다.
1963년에 밝혀진 조사에서 의하면 다시 미국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2천5백명 이상 있었고 석사학위를 얻은 사람은 2배 정도 되리라고 추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매년 약2백명 정도의 박사가 배출된다고 하니 사회학자의 수는 더욱 크게 불어 날 것이다.
사회학을 미국의 학문이라고 할만큼 사회학이 미국에서 크게 발전하게 된 까닭은 첫째로 그 사회가 민주적이고 학문의 자유가 크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서 대학의 자유가 덜 보장되어있다고 미국의 사회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확실히 대학의 운영이 여론에 크게 좌우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 미국의 대학은「유럽」의 그것보다 독자성이 덜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독재정권에 억압당한 독일이나 「이탈리아」 혹은 전란에 휩쓸린 「유럽」제국에 비해서 안정된 정치적 풍토를 가진 미국은 한결 자유로운 사회과학의 연구가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미국이 「프래크마티즘」이 강하여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오는 것 같다.
그러므로 실업·질병·전쟁 등의 커다란 사회적 곤란이 있을 때 미국의 정부와 공공단체는 곧 그것을 사회과학자의 연구에 따라서 해결하려한다. 셋째의 이유는 미국의 사회과학이 전통성에 의해서 약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과학이라도 실용성에 따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미국 사회학은 물론 발상지인「유럽」의 사회학을 도입하는데 바빴던 것 같으며 학풍도 「유럽」의 그것에 따라 역시 진화론적인 것이 풍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진화론이 쇠퇴해 가면서 한편에서는 심리학적인 사회학이 고개를 들고, 또 다른 편에서는 심리학을 통하여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하면서 실증적인 방법을 구사함에 따라 미국적인 특색을 가진 사회학으로 성장하게 된 듯하다.
여기서 미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필자가 미국의 사회학의 양적 방법과 실험주의적인 방법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방법론적인 특색이외에 이론적 방면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미국 사회학의 특색은 미국의 사회학이 극히 최근까지 사회의 동적인 면에 큰 관심을 베풀지 않고 균형적인 상태에 있는 사회의 단면에 대해서 이른바 구조적 기능적인 분석을 가하는데 치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일 이것을 미국의 사회학논의 특색이라고 일반화해서 말한다면 아마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의를 표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사회학자들간에서도 균형이론에 대해서 갈등 내지 투쟁의 이론을 내세우려고 시도하는 사람과 사회변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베풀고 있는 사람이 차차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향은 최근에 와서 더 커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과거 20∼30년간 미국의 사회학이론은 「하버드」의 「파즌스」같은 사람에게 영도되면서 사회의 횡단적인 구조적 측면을 기능주의적인 입장에서 분석하는데 힘을 기울여 온 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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