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금의 양성화와 그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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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과잉투자는 부정요소>
돈은 『표를 낚는 마술사』. 돈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없고 돈 안 쓰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선거의 ABC처럼 되었다.
정치권력을 누가 획득하느냐의 경쟁에 있어 자금의 확보와 그 다과는 승패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고도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 정치자금은 때때로 정치와 부패, 경제적 특혜 및 매표와 폭력배동원 등에 의한 선거자체의 왜곡까지를 가져온다.
구 정권 아래서의 각종 부정사건과 5·16 혁명후의 4대 의혹사건 등도 모두 정치자금 염출과 관련된 사건들.
『정치인들이 선거를 하는데 꼭 필요한 이상의 투자를 안 해야지 「오버 투자」를 하는 경우 이를 회수하기 위해 부정부패가 싹튼다.』는 것은 경제인협회 홍재선 회장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필요악으로 불리는 이 정치자금은 대의정치를 실시해 나가고 선거를 치러 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줄여야 하고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문리대 배성동 교수는 『기왕에 우리가 선거를 통한 대의정치를 하게 된 바에야 그 실을 거두어야 할 것이므로 그 관건인 정치자금의 양성화를 꼭 성취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어찌해도 안 되게 되어있다는 판정이 나올 것 같으면 우리는 우리의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돈의 원천 너무 좁아>
『정치자금을 사갈시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 나라의 경제가 너무나 정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리고 경제의 폭이 너무 좁기 때문에 정치자금은 철저히 규제되어야 한다.』고 회사원인 양찬규씨도 주장했다.
정치자금을 양성화하고 규제하려는 노력은 4·19직후 7·29 선거때부터 비롯됐다.
그 때 전용순, 이한원씨 등이 1억환을 모아 민주당 신구파의 분쟁을 중지하도록 조건을 붙여 헌금했다.
두 번째로 경협의 전신인 경제협의회가 61년 3월 민주당 정권에 시국수습(3월 위기설이 돌 때)을 하도록 1억5천5백만환을 거두어 제공했다. 이 헌금은 사실상 부정축재처리법안을 둘러싸고 처리조건의 완화를 내걸고 헌납된 것이었으며 그 뜻이 관철됐다.
세 번째는 63년 선거때 여 7, 야 3의 비율로 6천8백만원을 경협이 거두어 헌납한 때. 당시 4·19, 5·16의 고비에서 부정축재 처벌의 된서리를 맞은 재계는 『최소한의 자금을 댈 수는 있지만 그러한 헌금행위가 나중에 가서 불법화하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치자금 제공방법의 양성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이 65년 2월 9일에 제정 공포되었다.

<신문 통해 기탁>
이 법은 『산업·경제인, 기타 일반인이나 단체가 정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를 양성화함으로써 정치활동의 공명화와 건전한 민주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공포된 후 만1년이 경과했을 때까지 면세의 특전에도 불구하고 한푼의 기탁도 없었다.
중앙선관위에서는 신문지상에 기탁 호소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뒤에야 6백만원 내지 2천1백만원의 정치자금이 경협으로부터 제공되었다.
이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여·야당이 이 법을 매개로 한 헌금 이외에는 일체의 음성적인 거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며 경제인 스스로가 특정이권과 관련하여 음성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일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는 주장.

<음성 있으면 이중부담>
음성거래의 요소가 남아 있는 양성화는 결과적으로 이중부담의 피해만 가중시킨다는 것-.
한승헌 변호사는 『입법취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음성적 자금헌납을 합법화 시켜주는 구실을 주었을 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이 법을 비판했다.
홍재선 경협 회장도 『법이 불완전하다. 완전한 정치자금의 양성화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일본 등에서처럼 경제인 실업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시기나 대상정당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자금 규제법은 구미 각국 일본 등에서도 제정되어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실정. 정치자금을 양성화하고 규제하기 전의 미숙한 정치풍토에서는 이 필요한 악현상도 허다하다. 그러한 규제대상은 정당 안에서 주도권 싸움을 위한 직업당원들의 동원, 선거 때 등 비상시에 써먹기 위한 폭력부대의 양성 등을 들 수 있다

<대상 등 선택 자유 줘야>
당내의 주도권 싸움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보스」나 중간「보스」가 직업 당원들을 먹여 살리고 유사시에 동원되는 폭력부대를 유지하기 위해 뿌리는 돈도 정치자금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 밖의 규제 대상은 더욱 많은 편-. 『도대체 국회의원들이 자기에게 투표해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돈을 봉투에 넣어 돌릴 수 있는가? 선거법을 공공연히 위반하는 줄 알면서도 개인 후원회·봉사회·학우회 등에 돈을 내 놓고…』김동환 변호사는 정치자금의 음성화와 관련된 제거요소들은 이 밖에도 권농회를 조직해서 그 운영비와 농기구 등을 조달해 주는 일, 고무신·비누 등 선물공세를 취하는 일들이라고 지적했다.
교묘한 돈 쓰기 운동에는 수십만 유권자에게 식기 한 벌씩을 돌려주는 일이나 좀처럼 사진을 찍지 않는 촌노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주는 일도 들어있다.
표를 돈으로 사고 그 표로 의원이 된 뒤에 돈을 다시 벌어야 하는 악순환은 고질화한 폐단으로 되어 있으며 결국 국민한테 더 큰 손해를 안겨다주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자금의 실질적 규제와 양성화를 위해선 어떻게 할 것인가?

<대선거구제로 바꾸면>
대중당 사무총장 구익균씨는 『첫째는 방대한 선거자금 없이도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를 철저화해야 한다. 둘째는 선거자금에 충당할 수 있도록 당원의 당비제도를 실현시켜야 한다. 셋째로는 정치자금의 사용을 철저히 감시, 법에 정한 사용액을 초과했을 때는 당선을 무효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역협회 전무이사 라익진씨는 정치자금의 공정거래와 암거래의 두 가지가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전제하고 『모금운동을 통해 암거래는 없어져야 한다.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소스」로서, 특수업체를 지정하든지 정부예산에 정당 육성비를 책정해서 정치자금의 「소스」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균관대학교의 윤근식 교수는 『선거법을 개정해서 대선거구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분에 시기의 신축성을>
『유권자들이 투표를 할 때 정당의 정책대결, 과거의 실적 등을 투표의 판단기준으로 삼아 투표를 해야만 한다.』고 대한상공회의소 송대순 회장은 돈과 결부되지 않은 깨끗한 투표만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송 회장은 현재의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을 개정, 자금사정이 어려운 경제계의 실정을 고려하여 1년에 네 차례 내는 정치자금을 두 차례로 하고 배분방법도 시기에 신축성을 두어 선거관리위가 결정할 때만 언제나 주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인 윤영구씨는 위법선거만 하면 돈 안 드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치정경비 이외에 후보자들이 부정으로 쓰는 경비는 철저히 단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위원은 현행 우리 나라 선거제 호별방문 기부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어 부정요인을 모두 배척하고 있다고 설명.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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