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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확전으로만 대닫는 월남전…「하노이」는 과연 얼마나 전쟁을 지탱해 갈 수 있을지… 사진으로 보는 그 「남」과 「북」 - 미 리·로우크드 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괌」도 전략회의를 계기로 미국의 결의가 명백하게 드러났고 최근 월맹의 강경 태도로 보아 월남전은 확전의 길로만 치달을 것 같다. 과연 월맹은 앞으로 얼마동안 월남전을 끌고 나갈 수 있을까? 「프리랜서」인 「리·로우크드」씨가 최근 「쿠바」정부의 도움을 받아 미국 사진기자로선 처음으로 월맹을 28일 동안 방문, 그들의 임전태세를 「라이프」지에 상세히 보도했다. 그는 완충지대 부근, 「하이퐁」항, 「샘」유도탄기지 등 군사시설 등은 촬영할 수 없었으나 서방에선 보기 힘든 월맹의 일면을 상세히 소개해 주었다.

<「프놈펜」을 둘러 「하노이」로 비행>
「아바나」는 서반구에선 월맹대사관이 있는 유일한 수도이다. 나는 「멕시코·시티」, 「샌프란시스코」, 동경, 「홍콩」, 「프놈펜」을 거쳐 「하노이」로 들어갔다.
「프놈펜」에서 매주 화·금요일 2차에 걸쳐 「하노이」로 비행하는 국제감시위원단(ICC)비행기를 탔다. 북평·광동·남경에서 주2회마다 「하노이」행 비행기가 있으나 미국인은 탈수 없는 형편이다. 3명의 「프랑스」인이 조종하는 ICC비행기는 낡은 4발「보잉」307이었다. 우리는 도중 「브양트얀」에서 내렸다가 다시 20「마일」범위의 항폭을 따라 예정대로 오후 7시 5분 놀랄 정도로 맑은 「하노이」시가를 볼 수 있었다.

<남녕서 온 비행기 많은 손님 쏟아 놔>
「기아람」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조명등이 우리 비행기를 비쳤다. 남녕에서 온 쌍발 중공기에서 우리 비행기와는 달리 많은 승객들이 내렸다. 키가 작은 월맹인 한 사람이 나를 맞아주면서 『「로크드」씨죠. 잘 오셨습니다』고 말하곤 짐을 들고 있는 내 팔에 큰 꽃다발을 걸어주었다.
그는 외무성 신문과에서 나온 「랑」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는 입국수속을 도와주었다. 「칼라·필름」휴대는 금지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나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한 「우의의 표시」로 내 「호텔」까지 휴대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줄 것 같았다.

<칼라촬영은 금지 현상시설 없다고>
나는 특별히 천연색 사진을 찍도록 요청할 수 있었으나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찍은 「필름」은 모두 검열을 거쳐야 하며 「칼라·필름」을 뽑을 시설이 월맹에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는 「아바나」 월맹 대사관에서 「칼라」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검은 소련제 「세단」으로 맨 마지막으로 공항을 떠나 「하노이」와 「하이퐁」을 가로지른 홍하를 잇는 오래된 「도머」다리(지금은 「롱빈」이라고 부름)를 건너 「하노이」시내로 들어갔다.
「하노이」시민들은 아직 불인이 지은 「롱하트」(재건)「호텔」을 원명그대로 「메트로폴」이라고 불렀다.
「호텔」식당에는 월맹 식과 「유럽」식의 「메뉴」를 갖추고 있고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예쁜 월맹 아가씨가 시중을 드는 조그마한 「바」에는 「프랑스」의 「콩트로」·「진」·「조니·워커」·「스카치」·「아바나」담배 등이 있었다.

<호텔은 인종전시장 북괴·캐나다 인도>
어느 특별한 날 저녁에는 이 「호텔·로비」에 「폴란드」·「쿠바」·「프랑스」·동독·소련·영국·「캐나다」·「루마니아」·몽고·북괴·「아프리카」인들이 붐 빈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저녁에도 전쟁을 계속하는 나라라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았다. 폭탄대신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왜냐면 구정 휴일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6시 30분 벌써 시가지는 자전거로 붐비고 한 시간동안 개점하는 「바크·호아·통·호프」백화점에는 구정 휴일동안 특별히 파는 「샌달」 옷감, 과자, 장난감 등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었다. 거리의 인파 가운데 6명 중 한명 꼴이 제복을 입은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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