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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노화] 5. 호르몬 칵테일 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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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회춘(回春)의 묘약이 있을까.

의학적으로 가장 근접한 것이 바로 호르몬 칵테일요법이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국제노화학회에서도 이 요법과 관련된 다양한 발표가 있었다.

이 요법은 인체가 분비하는 호르몬을 외부에서 주사나 알약 형태로 서너가지 이상 조합해 맞춤형으로 처방하는 치료법. 모두 25개의 호르몬이 사용되지만 핵심은 성장호르몬과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DHEA(부신호르몬)와 멜라토닌.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등 5~6종이다.

일반인들에겐 골디 혼과 닉 놀티 등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이 TV토크쇼에서 호르몬 칵테일 요법을 통해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팽팽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호르몬 칵테일 요법의 장점은 빠른 효과입니다. 불과 서너 주 안에 근육의 발달과 지방의 감소로 인한 활력 증진, 성기능 활성화 등 인체기능 향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비록 수명 연장의 증거는 없지만 중년 이후 갱년기 증후군의 무기력증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입니다."

미국 UC 샌디에이고 의대 론 로텐버그 교수는 삶의 질 향상이란 측면에서 호르몬 칵테일 요법의 효능은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유명 스타나 부유층 인사에게 비밀리에 처방되곤 했으나 최근 중산층으로까지 시술 대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 요법은 미국과 유럽의 사설 노화방지 클리닉들이 주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는 거의 시술하지 않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의 한 사설 클리닉에서 만난 40대 사업가 리처드 도슨의 처방 내역을 보자.

'흉선 호르몬, 갑상선 호르몬, 멜라토닌 5백㎍과 DHEA 25㎎, 성장호르몬 1유닛 주사'.

이들 다섯가지 호르몬이 매일 투여된다. 성장호르몬은 주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매일 밤 자신의 배에 주사기를 찌르는 번거로움을 상쇄하고 남을 만한 활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배가 들어가고 피부가 팽팽해졌으며 수년째 괴로움을 겪던 우울증과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호르몬 측정 등 초기 검사 비용으로만 4천달러나 들었다고 했다.

호르몬 칵테일 요법은 비싼 시술이다. 미국의 경우 1년 치료에 8천~2만5천달러 정도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술기간은 보통 두세달이고 2~3년씩 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경우 한 사람에게 10여개의 호르몬을 동시에 쓴다. 자주 사용되는 호르몬은 여덟 가지다(그림 참조). 국내에서도 개원 의원 수십 곳에서 미국의 처방을 원용해 이 요법을 쓰고 있다.

호르몬 칵테일 요법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중년 이후 이들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한 만큼 외부에서 보충해주는 것이 옳다는 것. 예컨대 성장 호르몬은 20세를 정점으로 10년마다 14%씩 감소해 60세에 달하면 한창 때의 절반으로 떨어진다.

호르몬 칵테일 요법을 받으면 놀랄 만한 단기적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아니다. 우선 부작용을 걱정해야 한다.

미국노화의학회장 로널드 클라츠 박사는 "호르몬은 인체를 자동차에 비유할 때 일종의 출력 향상제"라며 "운동과 영양 등 휘발유는 부족한 상태에서 출력 향상제만 잔뜩 집어넣고 가속 페달을 밟게 되면 엔진에 과부하가 걸려 차가 망가지듯 인체에도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장호르몬의 경우 암을 일으키진 않지만 이미 암이 있는 경우 암세포 증식을 유도하며, 여성호르몬은 드물게나마 유방암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해 최근 미국 정부의 발암물질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로텐버그 교수는 "자신의 호르몬 분비 상태와 체력, 질병 유무를 잘 검토해 의사의 관리하에 투여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호르몬이 주는 효능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호르몬 칵테일 요법의 표준화된 처방지침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료기관마다 처방기준이 들쭉날쭉해 같은 환자인데도 병원마다 처방 호르몬의 종류와 용량이 다르다. 효능 면에서도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보다 컨디션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쪽이 우세한 느낌이다.

몇가지 호르몬이 면역력을 높이고 항산화(抗酸化)기능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이것은 굳이 호르몬을 복용하지 않고 운동과 영양섭취만 해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비용이 문제다. 성장호르몬 요법에는 매달 20만~30만원의 비용이 소요(국내의 경우)된다. 아직까지 호르몬 칵테일 요법은 보편적 치료술이라기보다 필요한 소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제한적 치료술이란 결론이다.

호르몬 칵테일 요법이 비방(秘方)으로 둔갑해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 학회를 참관한 서울대 의대 유태우 교수는 "검증되지 않은 호르몬 대체 건강상품들이 봇물 터지듯 소개되고 있다"며 "학계의 옥석 가리기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라스베이거스.팜스프링스=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s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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