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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혀버린 미국에의 길|「스탈린」딸 「스베틀라나」망명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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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6일 저녁 어둠이 깔린 「뉴델리」에 있는 미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는 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20세기의 「이봔뇌제」소련의 독재자 「조셉·스탈린」의 생존중인 유일한 막내딸 「스베틀라나·스탈린」이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대적으로 생각하던 미국에의 망명을 간청하러 남의 눈을 피해 찾아왔던 것. 그러나 자유를 그리던 당초의 부풀었던 꿈은 빗나가고 지금은 중립국 「스위스」에서 세계의 보도진을 피하며 유랑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
올해 42세의 홍발의 미녀인 「스베틀라나」는 지난해10월 그녀의 셋째 남편인 인도인 「싱그」(56)의 유해를 안고 작년 말 「뉴델리」에 도착했다.
그녀는 소련정부로부터 남편의 유해운반을 위해 인도에 사는 시가친척들을 방문해도 좋다는 허가를 얻어 슬하의 두 남매를 남겨둔 채 홀로 「모스크바」를 훌쩍 떠나온 것이다.

<남편의 고향에서 마음의 안식 찾아>
인도에 온 후 남편 「싱그」의 고향 땅 「간지스」강가에 그 유해를 묻고 그녀는 이 지방의 명문인 남편의 친족들을 방문, 수상 「간디」여사와도 면담하면서 한동안 「마음의 안식」을 찾는 듯 했다.
「스베틀라나」는 자기의 여생을 남편의 고향 「칼란칸카르」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두 달을 인도에서 보낸 그녀는 지난6일 저녁 갑자기 이곳 미 대사관에 미국에의 망명을 요청한 것이다. 그녀의 갑작스런 망명요청을 받은 현지 미 대사관은 너무 놀라 그녀가 「스탈린」의 딸이란 사실마저 의심 「모스크바」주재 미 대사관을 통해 겨우 확인한 후에야 본국정부에 이 사실을 비밀리에 통보, 백악관과 국무성을 놀라게 한 것이다. 미 당국은 한때 「스베틀라나」의 망명설마저 일체 논평을 거부하는 한편 「뉴델리」의 미 대사관엔 이미 그녀의 미 입국「비자」를 일단 거절토록 통보했다. 미국은 「스베틀라나」의 미국망명의 허락이 싹트려는 미·소 간의 협조「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고 우려했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아메리카」 역사도 잘 알지만>
더욱이 요즘 소련과의 미묘한 핵확산금지협상 및 영사협정과 「존슨」 대통령 자신의 동서간 완화정책은 물론 늘 말썽인 재소 미국인 처우문제 등을 배려한 미국이 당분간 「스베틀라나」의 미국망명을 거부하기로 한 결정은 「존슨」 대통령 자신이 지시했으리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녀의 망명 결의 경위는 그녀가 인도에 두 달 남짓 머무르는 동안은 물론 그녀가 소련에 머물을 때부터 전공학과의 영문학과 미국사를 탐독할 때부터 미국에의 동경과 호기심을 품어왔으리라는 설이 있다.

<미국갈 꿈 사라지고 로마에서 스위스로>
「스베틀라나」가 주인 미 대사관에 들어간지 몇 시간 뒤 그녀는 「로버트·레일」 2등 서기관을 따라 대사관 뒷문을 빠져나온 후 「뉴델리」공항으로 향했다. 「레일」은 외교관이면서도 미 국무성에 등록된 CIA요원으로서 이때부터 「스베틀라나」의 그림자 같은 「수행자」로 등장했다. 그녀는 출국「카드」에 모 명인 「알질루예바」로 기입, 「레일」은 1천50「달러」를 치르고 두 장의 「로마」행 1등 석 표를 샀다. 「로마」에 기착한 뒤 사흘동안 그녀는 어느 교외 별장에서 불안한 날을 보내며 이때까지 자기가 미국망명에의 길에 오를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미 당국은 당초의 계획대로 그녀의 「스위스」입국「비자」교섭에 전력, 미 당국은 마침내 「스베틀라나」자신이 『미국의 대소 관계를 고려, 「유럽」으로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고 발표했다.

<스위스정부가 준 3개월 간의 비자>
「스위스」정부가 그녀에게 3개월 간의 관광「비자」를 허락하자 지난111일 「스베틀라나」는 미국이 주선한 3천「달러」의 전세기편으로 CIA요원인 「레일」과 함께 「제네바」에 내린 것이다.

<충격컸던 부친격하 증언의 날 올지도>
그녀가 「트랩」을 내리자 백여명의 각국 기자들은 그녀에게 「스위스」로의 망명여부를 물었으나 「스베틀라나」는 가볍게 머리를 저을 뿐 말없이 「스위스」정부가 내준 2명의 경호원과 함께 「베른」의 어느 산장으로 사라졌다.
이때부터 그녀와 보도진사이는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얼마 전 그녀는 자기의 숙소를 기자들이 알아챈 기미를 알고 숙박비마저 물새도 없이 다른 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편 「스베틀라나」의 이번 망명에 특히 과민해진 인도-. 인도당국은 급기야 「스베틀라나」가 인도의 체류를 열망했으나 인도의 대소 관계의 악화를 고려한 나머지 결국 미국을 정치망명처로 택했다고 보도하는 등 미·소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눈치재기에 무척 부심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스베틀라나」가 이번 망명의 용단을 내리게 된 동기의 하나는 뭣 보다 1956년 그녀의 아버지 「스탈린」이 「흐루시초프」에 의해 격하된 이래의 정식적 충격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여튼 역사의 운명은 얄궂은 것, 오늘도 「스베틀라나」는 「스위스」의 어느 산장, 50년 전 그녀의 아버지 「스탈린」의 스승인 「레닌」이 한때 망명을 찾아야 했고 또 30년 전엔 바로 「스탈린」의 「테러」를 피하기 위해 수많은 아버지의 정적들이 망명길에 올랐던 기연의 땅 「스위스」에서 어쩌면 「크렘린」의 미지의 역사를 증언할 날을 고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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