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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꽃과 모터사이클, 나는 기마족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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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원규
시인

말 그대로 만화방창이다. 위기의 한반도 사람들에게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힐문하듯이, 절규하듯이 온갖 꽃들이 피어난다. 화개장터의 벚꽃 십리 길은 이미 절정에 다다랐다. 제대로 벚꽃을 보려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와야 한다. 아니면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팝콘 터지듯이 조바심만 피어난다.

  벚꽃을 온몸으로 감상하려면 일단 차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 쨍한 햇살에 어리는 환한 꽃빛도 좋지만, 이른 아침의 한적한 꽃길이나 밤 벚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바람결에 눈썹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멋지다. 그리고 행여 가능하다면, 트럭의 짐칸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눈 시린 하늘을 배경으로 벚꽃을 바라보며 천천히 달리는 것 또한 기가 막힌다. 천상의 꽃살문이 주욱 지퍼를 내리듯이 열리는 환상체험을 할 수 있다.

  봄날의 꽃 피는 속도는 사람의 걸음걸이와 꼭 같다. 3만 리를 걸어본 뒤에야 겨우 깨달은 것이다. 화개장터에서부터 여의도의 윤중로를 향해 걸어간다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마다 벚꽃을 볼 수 있다. 아마 봄을 가장 오래 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북상하는 꽃의 속도와 남하하는 단풍의 속도도 이와 같다. 하지만 날마다 걸을 수만은 없으므로 나는 모터사이클을 탄다. 사실 꽃과 바이크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차를 운전할 줄도 모르고, 가진 것이라고는 30여 년 동안 오직 이것밖에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자전거보다는 조금 더 폭력적(?)이지만 꽃바람을 맞으며, 꽃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달리는 맛은 날마다 감동적이다.

  때로 폭주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스스로 우리 시대의 마지막 기마족이라며 애써 자위한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라이더들에게 반갑게 손짓을 하며 ‘두 바퀴 인생들’에게 동병상련의 정, 연대의 인사를 나눈다. 지난 3월23일, 31일에는 모터사이클 안전기원제에 다녀왔다. ‘BMW 모토라드 시즌 오프닝 투어’에 참가해 라이더 대표로 안전기원문을 낭독했다. 겨우내 움츠렸던 라이더들이 경북 상주의 도남서원 낙동강변 주차장에 모였다. 전국에서 무려 900대의 바이크가 모였다. 외국인 동호회 ‘방고 바이커스 모터사이클 클럽’ 회원들도 참석했다. ‘과부 제조기’라는 오명이 무색할 정도로 바이크 문화는 예전보다 많이 성숙해졌다. 헬멧을 벗으면 대개가 중장년들이며 여성 라이더들도 많아졌다. 대청댐에서 열린 ‘MCK 안전기원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고가의 외제 바이크로 위화감을 주기도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인생을 건 로망이자 레저’이기 때문에 그리 탓할 수만도 없다. 영화 ‘이지라이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영화배우 이완 맥그리거의 세계일주 등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반감이 더 많다. 일부 폭주족들 때문이다. 거기에다 무조건적인 편견 또한 거든다.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아쉬운 대목이다. 조금 더 빠른 만큼 더 위험한 것도 사실. 그리하여 ‘진짜 고수는 더 빨리 잘 타는 게 아니라 사고 없이 오래 타는 것’이 정설이다. 나는 뛰어난 라이더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한반도 남쪽을 100만㎞ 이상 ‘인간 내비게이션’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달렸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삼일절이 되면 언론에서는 그 의미보다 ‘경찰과 폭주족의 전쟁’을 더 많이 다룬다. 단속에만 방점이 찍혀 있고 ‘라이딩 스쿨’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단속 외에는 아무 정책이 없다. 퀵서비스 문제도 마찬가지.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영업용 번호판을 달게 하고, 지속적인 계도를 병행해야 한다. 바이크를 모는 교통경찰관의 안전복이나 헬멧도 너무나 미흡하다. 300만 대 이상의 탈것에 대해 무책임하다. 정부는 사고 유형과 분석 등을 토대로 대책을 세우고, 민간의 이륜차문화개선운동본부 등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옛사람들이 말을 타고 산천을 누비던 것과 가장 닮은 게 있다면 바로 바이크를 타는 것이 아닐까. 이 땅의 라이더들은 한갓 폭주족이 아니라 화랑의 후예처럼 명예로운 기마족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 환한 봄날에 ‘한반도는 38선으로 잘린 섬이 아니라 대륙’이라는 상상력을 끝내 접을 수가 없다.

이원규 시인